새벽의 첫 말씀 펴는 이름 없는 종직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 장엄하고 청명한 새벽 종소리를 들었습니까. 어둠을 여는 새벽하늘, 일렁이며 수런거리며, 온통 새 빛으로 가득 찬 새벽하늘은 참 아름답습니다. 이제 종을 울리는 사람의 그 경건한 손, 새해 새 빛을 첫 새벽 말씀으로 하니, 저 울림 없는 울림으로 울려오는 겸허한 뜻을 읽었습니다. 새해 새 빛을 온 누리에 길어 올리며, 모두의 밝음으로 참됨으로, 그리고 하나의 생명으로 저마다의 가슴을 적셔주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연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그것은 진정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것은 결코 너와 내가 남일 수 없고 둘일 수도 없으며, 더구나 서로가 외면할 수도 갈라설 수도 없는, 너와 나의 마음으로 모두의 마음이며, 한 마음의 한 뜻입니다. 정작 스스로 하는 그 뜻(자성(自性))이지요.
이제 저 삼십삼천의 온 하늘이 일체의 마음으로, 우리들 모두의 한 마음 빛으로 열리고, 시방세계가 우리 모두의 한 울안 한 뜻으로 밝아온 새해 새 아침입니다. 새해 새 아침 선물은 무엇으로 드려야 합니까? 그러나 실은 여기에 족히 드려야 할 한 물건도 없습니다. 다만 애오라지, 한 조각 마음인들 저만으로서 소중히 지니는 것만으로 족하고 족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저는 저 새해를 울려준 어느 이름 없는 「종직이」의 떨리는 그 손과 오직 거짓 없고 충직스런 그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새벽의 첫 말씀을 펼쳐내어 이 아침 새해 인사에 가름할까 합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 서품 제1장)
나의 얼굴을 저 두렷한 거울(일원상)에 비춰봅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이 나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늘 위에서도 하늘 아래에서도 오직 호올로 우뚝 솟아있는 저 무한대한 나의 키를 보았습니까? 나의 안에도 나의 밖에도 그 안과 밖을 뛰어넘어서도 다만 나뿐인 이 나는 그 어느 상대와도 짝할 수 없고 그 어느 물건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 만유가 다 나의 얼굴입니다. 저 두렷한 거울은 만유의 얼굴이자 그대로가 곧 나의 얼굴입니다. 그것은 나의 얼굴이자 나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체성이 나의 바탕이 되고 그의 기틀이 또한 나의 생명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와 나는 따로이고 둘일 수가 있으며, 대립하고 분열하고 투쟁을 벌인다는 말입니까? 누가 누구를 미워해야 하고 또 그 누가 그 누구를 시기하고 배척한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다 누구인데, 누구의 얼굴, 누구의 생명인데, 정말로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대립 항거 투쟁의 연속판을 보고 그것이 역사의 정칙인 것처럼 의례히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 잘못이 있습니다. 호리의 차가 천지의 현격을 일으킨다 하는 것인데, 그 미움의 씨앗 하나가 들어서, 그 맑은 눈에 어쩌다 개자씨보다도 작은 티 하나가 들어서 그것이 마침내는 엄청난 역사의 역류로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소홀히 넘겨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상극의 울타리, 남북의 장벽은 아직도 남아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우리들의 생존을 제법 크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무엇입니까? 쾌쾌 묵은 낡아빠진 역사의 유물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들 서로의 마음에서 찰나적으로 벌어지게 된 그 사소한 틈새, 이것이 정말 오늘날에는 메꿀 수 없는 공동이 되고만 것이 아닙니까?
이 엄청난 공동, 이 허무의 높은 무엇으로 메꾸고 무엇으로 채워야 합니까? 그것을 메꾸고 채우는 길은, 오로지 일체를 죽이고 일체를 살려내는 우리들 모두의 결단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한 번만의 장중한 결단에서 새 진리의 얼굴, 새 생명의 얼굴, 새 역사의 얼굴은 바야흐로 저마다의 한 조각 마음자리를 통하여 두렷이 밝아올 것입니다.
새 진리 새 생명, 새 역사의 그 체성과 기틀은 바로 우리들 모두의 마음입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제 마음을 돌이키고 돌이키는 것은 일체생령을 한 품으로 살려내고 길러내는 사랑의 회복입니다.
「어찌하여야 산하의 국토를 돌려 자기가 되게 하겠습니까!」
「어찌하여야 자기를 돌려서 산하와 국토가 되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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