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화가 한복판에서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걸음이 멈춘다. 추위에 쫓겨 옷깃을 세우고 총총 걸음을 치던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발걸음이 한 결 부드럽고 조금치도 부산하지 않다. 어쩌며 여인들의 옷단장이 저처럼 가벼워 졌을까.
분명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땅속에서 꿈틀 기지개를 켜는 아기 벌레의 가벼운 몸짓이, 긴 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내쉬는 부드러운 새 생명의 따스한 숨결소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만 같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녘엔 머지 안아 파란 싹들이 해 맑은 봄볕을 담뿍 이고 돋아나리라. 벅찬 새 생명들이 저마다 마음껏 어깨를 펴고 온 누리에 새 삶을 구가하는 감격의 몸짓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봄, 진정 이 봄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저 들녁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교단의 「마음속의 봄」이 되어야 한다. 얼어붙은 교단의 고도기를 진정 이 봄에는 녹여야 할 것이다.
▲ 유난히도 춥고 길었던 겨울을 겨우 겨우 넘겼나 했더니 요즈음 때 아닌 추위가 몰아닥쳐 자식을 가진 어머니들의 마음을 꽁꽁 얼려 놓았다.
일간신문마다 호소의 기사가 연일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나오는 1백 10여 일이 접어든 윤상군의 유괴 사건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슴을 메이게 한다.
기사에 따르면 윤상이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엄마를 대신하여 물을 받았고 친구들과 다투어 본 일이 없으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언제나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 양같이 착하고 순한 소년인데, 더구나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몸도 성하지 못하다 하니 이처럼 착하고 가여운 소년을 괴롭히는 비정이 몹시 밉기만 하다.
더욱이 금년은 「지체 부자유자의 해」로 세계가 다 함께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자고 벌이는 캠페인이 무색하기만 하다.
범인은 단 1초라도 빨리 본성을 회복하여 윤상군을 무사히 돌려보내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든 교도들은 부모 형제로서 윤상군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속 깊이 기도하고 심고를 올리고 이 아이 찾기에 앞장서야겠다. 「아들을 대신하여 죽으라면 죽겠습니다.」는 모정의 슬픈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 지난 26일은 소정의 학업을 이수하고 또 5급 교역자 고시에 합격하여 교단을 위해 개인의 이욕을 포기한다는 철저한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살겠다는 39명 선남선녀가 새 교무가 되는 출가식을 거행했다.
이번 출가식은 예년보다 추워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그 무엇이 결여되어서 그러는지 석두암자는 비치는 피부에 와 닿는 기운이 웬지 썰렁한 느낌이 든다.
날씨가 춥다면 출가식을 4~ 5울의 따뜻한 봄에 하면 되겠지만, 따뜻하게 품어줄 교단의 스승님들이 참석치 않았을 때는 비록 출가식이 한여름에 진행된다 할지라도 썰렁하기는 매한가지 일 것이다.
출가식은 새 교무가 대종사님의 사도로 출발함으로 이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교단의 큰 행사로 확대되어 성스럽게 행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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