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광 <완(完)>
6.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의 관계
자율과 타율의 병진법
훈련으로 국가와 세계를 참되게
체와 용의 관계

정기훈련법은 정(靜)할 때 즉 일이 없는 무사식의 공부법이요, 상시 훈련법은 동(動)할 때 즉 일이 있는 유사시의 공부법으로써, 정기훈련은 체가 되고 상시훈련은 용이 된다.
정기훈련법에도 삼학공부가 들어있고, 상시훈련법에도 삼학공부가 들어있으나 정기훈련은 수양과 연구가 주체가 되고, 상시훈련은 취사가 주체가 된다.
정기훈련에서 상시훈련으로 연결되지 아니하면 정기공부의 공효가 없는 것이요, 상시훈련으로 공부를 진행할 때에 정기훈련을 받지 아니하면 공부에 조백이 없고 새로운 힘을 타지 못한다.
삼학병진의 관계
대종사님의 공부법은 동정간 불리자성의 무시선, 무처선 공부다.
정기훈련은 정할 때의 공부로 수양과 연구가 주체가 되고, 상시훈련은 동할 때의 공부로 취사가 주체가 됨으로 삼학병진 관계가 있다.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을 조화 있게 운용하면 동정 간에 자연히 삼대력을 얻게 되어 위없는 여래의 권능을 행사할 것이다.
자율과 타율의 관계
수행에는 자력 수행과 타력 수행이 있다.
어린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보호라는 타력에 의해서 자라듯이 자력이 부족한 수행인에 있어서는 자율적인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정기훈련제도를 마련하여 의무적으로 훈련을 받도록 한다. 그러므로 정기훈련은 부모의 보호와 지도를 받는 것과 같고 상시훈련은 어느 정도 자력으로 자기 문제를 처리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훈련을 결함 없이 착실하게 받은 사람은 법도 있는 부모의 슬하에서 성장한 자여와 같이 법도 있고 순서 있는 공부를 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상시훈련법을 배워서 상시로 공부해 가는 사람은 법도 있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력을 얻어 처세의 도와 대인접물의 도를 임의로 행사하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우리 수행인들은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의 불가분의 중요한 관계를 알아야 하다.
결어
훈련은 적공이요, 성불의 길이다. 부단한 훈련 없이는 인간개조, 사회개조, 세계개조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훈련은 도덕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현하 위기의 시대를 직관하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인류의 종말을 예견하고 도덕의 재무장을 역설하고 있으나 훈련이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실천 운동 없이는 인류의 구원은 요원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누가 누구더러 훈련을 강요할 것인가? 내 스스로 내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훈련해가는 것이 선각자요, 인류를 구원할 선구자다.
우리는 전 인류를 구원할 약재와 의술을 가지고 있다. 삼학팔조, 사은사요의 교리는 약재요,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은 의술과 같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소상하게 배우고 익히어서 하루 속히 불과를 얻는 길만이 남아있다.
진정으로 수신하여 제가하고 치국하고 평천하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훈련법을 연구하여 두어야 할 것이다. 훈련하는 국민이어야 국가와 민족을 살리고 번영과 영광의 땅에 서게 될 것이다. 훈련하면 모두가 잘 살고 훈련하지 아니하면 모두가 자멸한다.
새 시대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개벽의 교법이 여기에 있다.
<상주선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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