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설립동기 밝힌 「불법연구회규약」원기 12년에 간행
「종사주의 하명에는 수화를 불피하고 절대 복종하기로 함」
대종사 재세 시인 원기20년에 해외교당인 일본대판 서성구교당에 교역자 발령

 대종사께서 대각하시어 교문을 연지 62년. 1백만 교도에 3백여개의 교당과 1천여 교역자, 아직 짧은 역사이지만 초창의 일들이 정신으로만 이어지고 사건은 희미해진다. 여기 새해 아침에 원불교 NO.1을 열 가지 추렸다. <편집자 주>
□최초교당 영산교당
 소재지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 대종사께서 탄생하시고 대원정각을 이루신 성지에 위치한 영산교당은 원기3년 3월부터 십여 정보의 해수지를 막아 간척답을 이루고 동년 10월에는 길용리 옥녀봉 아래에 최초교당인 구간도실을 건립한 후 불법연구회 기성조합을 설시하였다. 그러다가 8년 8월에 영산원을 신축 이사함. 원기9년 4월에 창립총회를 열고 총부를 익산으로 이관하기로 결정, 이에 영산원을 영광지부라는 간판을 부치고 교단 최초의 지부형식을 갖춰 임원을 선정함. 원기26년 영광읍에 교당이 설치되자 영산지부라고 개명. 원기47년에는 영산선원이 발족되자 교당과 분리, 영광 관내 교당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최초교서 불법연구회 규약
 원기12년 3월 초판발행하고 19년에 재판. 목차를 보면 회의 유래, 회의 취지 설명, 회의 규약 등이 있고 연구인 공부순서로서 삼학팔조, 계문, 솔성요론, 고락에 대한 설명, 응용할 때 주의사항,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 등의 교리와 회의 세칙으로서 여러 가지 교규가 있다. 회의 취지에서는 불법연구회의 설립동기를 밝히고 있다.
□전무출신 서원서 제1호
 소태산대종사 열반 후 초대 종법사로 1900년 8월 4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동에서 출생. 원기2년 7월 대종사와 만나 교단최초로 수위단을 창단할 때 중앙단원으로 대종사를 보필하여 원기4년 7월 법인기도를 성사, 영산지부에서 인재양성, 성지장엄사업, 불법연구회 창건사 집필, 불교정전 편찬보좌 등 교정전반을 보필하였으며 원기28년 대종사 열반으로 종법사에 취임. 서원서 내용은
誓願條項
1. 종사주의 하명에는 수화를 불피하고 절대복종하기로 함.
2.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유루없이 실천하야 성불제중 하기로 함.
3. 무량겁을 통하야 종사주의 법륜을 따라서 인연을 맺기로 함.
소화2년(원기12년) 11월 1일
증참인 이재철
□입교번호 제1번(여) 십타원 양하운(열반)
 생년월일 1890년 12월 3일. 주소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 입교 원기 13년 8월 7일. 연원 종사주. 대종사의 부인으로 교단에서는 대사모라 칭함. 16세에 한살 아래인 대종사와 결혼, 대종사 대각이 있기까지 부군의 구도생활을 위하여 근실한 내조를 함. 신심 공심은 남자 전무출신 권장부들의 모임인 정토회원 1호로서도 후진 정토회원들의 귀감이 됨. 84세되는 1973년(원기58년) 1월 7일 열반.
□대봉도 제1호 □남자입교 제1번 팔산 김광선(열반)
 대종사의 최초 제자. 9인 제자의 1인. 1879년 9월 6일생으로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산. 대종사 연원으로 원기9년 4월 29일 입교. 31세부터 12년 아래인 19세의 대종사와 의형제를 맺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대종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다가 1916년 3월 26일 대종사가 대원정각을 이루니 첫 제자가 되었다. 원기19년 원평교무를 지냈고 23년 총부 순교무로 재직하던 중 원기24년 1월 3일 열반하니 법위는 정식법강항마위. 원기42년 출가교도로 원성적 특등에 해당. 대봉도의 법훈을 추증.
□교무 제1호(남) 삼산 김기천(열반)
 교단최초 9인제자의 1인. 1890년 6월 5일생으로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산. 원기3년 8월 1일 출가. 원기9년 영광교당 초대 지부장을 역임하고 총부 서무부장, 교무부장, 선원교무를 거쳐 부산 하단교당(현 당리) 교무로 재임 중 원기20년 10월 9일 열반. 법위는 정식 출가위. 교리송, 사은찬송가 등 시가와 철자집이 유작으로 유명하다. 대종사도 견성을 인증하여 교단 최초로 견성인가 받음.
□정녀 제1호 융타원 김영신 법사(수위단원)
 1908년 2월 6일생으로 원기10년 10월 14일 어머니 이성각씨와 이모 이공주 법사(현 수위단원)의 인연으로 입교. 원기13년 4월 1일에 출가, 총부 서무부 서기로 전무출신 첫 출발. 첫 교무 부임은 남부민교당으로 4년, 전주교무 7년, 총부 순교감 3년 등 전무출신 50여년에 현재 중앙수양원 교감으로 재직. 수위단원으로 원기28년 피선, 38년에는 교단 봉직 25년 이상의 정녀에게 수여하는 연화장을 받았음.
□대호법 제1호 □재가수위단원 제1호 팔타원 황정신행 법사(수위단원)
 1903년 7월 10일생으로 주소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산6. 1927년 3월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 주단포목상회를 경영하던 중 상경하신 대종사를 만나 입교, 원기23년에는 원불교 탁아소 소장에 피명. 5ㆍ16민족상, 국민훈장, 동백장수상. 74년에는 휘경여자중ㆍ고등학교를 설립, 이사장에 취임(현). 원기42년에는 재가교도로 원성적 특등에 해당, 대호법으로 추대되고 43년에는 교단 최고의결기관인 수위단원에 재가교도로 첫 피선.
□정남 제1호 중산 정광훈 법사(수위단원)
 1917년 8월 30일생으로 원기15년 2월 16일에 입교. 원기20년 출가한 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수학하고 교정원의 재무부장, 교무부장, 총무부장 등을 역임. 원기44년 4월 26일 수위단원에 피선. 원기47년에는 하섬요양원장(현) 51년에는 원광중ㆍ고등학교교장으로 취임(현). 정남이란 굳은 지조와 맑은 정절로 일생을 결혼하지 않고 오직 공중사에 힘쓸 것을 서원한 독신 남자 전무출신.
□해외파견 교역자 제1호 영산 박대완(열반)
 1885년 1월 5일생으로 전남 순천군 삼원면 진례리산. 원기12년에 대종사를 만나 출가, 원기20년 6월 일본 대판 서성구교당 교무로 부임, 원기26년에는 만주 목단강시교당 교무로 부임.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하고 해박한 지식과 웅변가의 재질을 살려 일본과 만주교화에 활기를 띄움. 원기21년 9월에는 용신교당 교무로 부임, 상록수 교역자의 모범을 보임. 원기24년 수위단원에 피선. 원기43년 1월 4일 중앙수양원에서 열반.
<자료조사 조학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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