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정 교무·네팔 포카라교당(논설위원)
요즘 한국인들의 대화 속에서 전에 없이 자주 들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이 소통이다.
자주 사용되는 이 소통이라는 단어 속에서 빛과 관련된 사고가 떠오른다.

흔히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라고 말한다. 장님은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빛을 모른다. 때문에 그는 촉감이나, 소리 등의 다른 감각기관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상황은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는 탓에, 다리를 만지고 나서는 코끼리를 기둥 같다고 주장 하거나, 배를 만지고 나서는 평평하다고 주장 하거나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할 때, 자신이 서 있는 입장을 떠나서 바라보기가 어렵고 자기의 주장을 놓기 또한 어렵다. 그 입장에서 나온 주장은 각각의 다른 각도에서 일어나는 빛의 굴절 현상이거나, 인식의 차이를 갖게 되기 일수이다.

소통은 이런 빛의 굴절을 인식하고, 다른 각도에서 일어나는 굴절의 차이를 인정해서, 굴절 없이 전체를 인식해 나가는 빛을 향한 비상(飛翔)의 노력이 서로에게서 일어날 때 가능할 것이다.

각자가 서 있는 땅의 지점에서 한 치 뛰어올라, 빛 그 자체를 바라보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 빛 속에서는 너도 나도 굴절도 없기 때문이다. 참회문에 보면 '업은 본래 무명인지라 자성의 혜광을 따라 없어지나니' 라고 하셨다.

이 소통은 작은 일에서부터 내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자성을 향한 도약을 수반해야 한다.

흔히들 21세기를 영성의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문화가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발하게 된다고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특징으로 21세기를 개념 짓는 요소들이 많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개개인의 개성이 고양되고 드러나서 개별적인 고립감과 소외감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을 역으로 유추하게 하는 부분이다.

대산종사께서 20여년 전 원기 백주년을 향한 '대적공실'이라는 제목하에 '자신 성업봉찬'으로 우리에게 주신 화두는 각자의 입장에 파묻힐 것이 아니라, 그 입장을 만들어내는 빛 자체를 향한 도약이 해결책 임을 알아가도록 하신 것이 아닐까.

이 화두로 교단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대정진·대적공하여 양계의 인증과 더불어 음계의 인증이 쏟아져 나오게하자 하셨다.

그 화두는 자신을 스스로의 입장 속에만 머물러 있게 할 것이 아니라 자성의 혜광으로 나아가는 일, 그러면 그곳에서 모두와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음을 시사하지 않았을까. 그런 뜻에서 불법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가 주는 의미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꾸려가야 하는 개별화 되고 다양화 된 시대에 종교라는 틀을 벗어나, 각자의 삶 속에서 빛을 생산해 내고, 빛을 퍼 올려서 나누어 주는 종교의 시대적 사명을 읽게 하는 부분이 있다.

대종사님께서 '사은과 삼학만 놔 두고 다 변할 수 있다'는 말씀이나, '다 없어져도 일원상 서원문만 있으면 이 회상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하신 말씀들은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이 그 근원되는 진리의 빛을 얻고, 그 빛으로 자신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직선적인 노력이 아주 필요한 시대임을 전제하는 뜻으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모두가 일원 회상의 빛으로 거듭나서 새 해 새 마음으로 새 회상, 새 세상의 주인 될 수 있도록 빛으로의 도약을 이루어내고, 그래서 이루어진 소통이 일원의 법등을 밝히는 혜명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까지 성공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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