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학적 구제론의 연구
자유는 종교적 자기수행으로 완숙 가능
정의란 사회의 근본악에 대항하는 용기
현대의 종교는 교리에 있어서 과학적인 논리 요구 돼

 일반적으로 인간이 초인간적인 위력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외포 내지는 신뢰의 정을 느끼며 희생을 바치고 소원 예배하며 나아가서는 제사 의식을 행하고 의무 관념에서 복종 종사하는 생활을 할 때 이 관계를 종교라 일컫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교에 대한 정의도 한 유형에 불과하며 시대적 상황과 지역적 특수성 또는 종교학자의 관심도에 따라 종교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종교의 정의가 어떤 형태로 내려지든 간에 여기서 우리는 종교를 창조하고 종교를 신앙하며 수행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따라서 모든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개인적인 인격과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를 어떻게 증진시키고 성숙 발전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대의 인류는 고도의 과학시대 살고 있기 때문에 종교교리에 있어서도 과학적인 논리가 요구되며 종교 신앙을 통해서 체득되는 구원과 해탈의 경지에 대해서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증명과 현시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또한 근원적인 「인간성」의 문제에로 눈길을 돌려 禪중심의 종교로부터 인간중심의 종교로 탈바꿈하여 인간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인격가치를 양양할 필요가 있다. 현존하고 있는 세계종교들의 대부분이 구축시대에 그 형성을 보았는데 이 구축시대란 모든 면에서 혼란기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성이 정치적 폭압과 경제적 빈곤 사회적 무질서 등에 의해 말살 당하였으며 인간들 간에는 윤리부재의 시대였다. 이렇게 볼 때 기성 노인종교들의 발생은 당시의 혼란기적 상황 하에서 인간윤리 회복과 인간질서 확립에 주된 포인트를 맞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적 부의 축적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고도문명의 이기 등이 인간성 파괴의 주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물질주의로 치닫는 현대의 추세에 제동을 걸어서 정신주의와 병행토록 조정을 가하는 일이다. 여기에 현대종교의 사명이 있으며 구원의 참된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당과 교역자는 전 세계의 전통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해서 영광을 받기보다는 이 세상을 위해 인류와 역사를 섬기도록 부름 받은 고난의 집합체이어야 한다. 그런데 구제의 문제는 개인구제와 사회구제의 이원성을 낳는다. 여기에서 개인이 구제를 얻으면 사회는 자연히 안정과 평화를 회복하며 반대로 사회가 평온하면 개인이 구제를 얻게 된다는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생겨난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는 서로가 괴리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내포와 외연의 개념으로도 그 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 즉 개인과 개인이 상호 연계되어 있는 그 가운데 자석의 자장처럼 새로운 장이 생겨나고 그 장은 사회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관계성의 장, 말하자면 인간관계의 심천에 따라 인격가치의 척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종교가 안고 있는 구제론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개인의 영혼구제만이 구제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왔던 기성종교관에서 탈피하여 인간관계를 가장 잘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당과 교역자는 복합적인 사회구조와 이지러진 인간본성의 죄악성을 함께 꿰뚫어 보며 다원적인 포교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구태여 종교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구제가치와 사회구제 가치를 들라고 한다면 자유와 정의라고 표현하겠다. 자유는 일반적 개념이지만 해탈 초월과도 상통하는 말로 자기의 인격추구를 통해서 얻어진 최고의 능력이며 자제와 극기의 성숙체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란 종교적인 자기수행이 없이는 결코 완숙할 수 없는 개인구제의 최고봉이라 할 것이다. 사회구제의 개념으로서의 정의도 또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의라는 말을 공익적이고 이타적인 의미에서 정의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적 질서와 사회공동태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시대조류를 사회구제를 저해하는 근본악으로 보고 이에 과감히 대항하는 한편 모든 개인이 보다 넓고 중요한 인간의 공익에 공헌하도록 촉구하는 행위」를 정의라고 규정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구제란 완전히 도덕적 노력이요, 윤리일 뿐이지 종교가지 도입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의문에 부딪친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는 인간현상의 문제해결에 그칠 뿐 근원적 진리, 우주적 질서와의 조화는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인간관계인 「나와 너」 사이에 발생하는 우리라는 개념을 충족시켜 준다면 종교는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나와 자연, 나와 절대적인 그것(진리 또는 신)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연결 지어 주는 매체적 역할을 담당한다. 성자의 가르침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단순한 인간현상이 질서 확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를 인간관계에 도입하여 완벽한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을 근원적 표준을 제시하신 것이다. 여기에 종교인이 담당할 인간구제의 새로운 사명이 있다. 근원적 진리에 위배되는 한, 어떠한 현실과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종교적 지조를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구제하려 뛰어들 것이며 그러한 종교적 지조로서 하나의 축을 이루어 바람직한 인간성 함양에 노력하는 것이 종교의 본래 사명이며 성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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