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타원 조전권정사의 생애
허풍떤다고 하지만 내 눈엔 잘한 것만 보여
승전고 울리며 떠난 영광의 길

 원불교가 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 장로의 딸로서 제일 먼저 정녀를 서원하여 70여 생애를 통해 자애, 덕화, 공경, 정성, 융화의 체취로 간고한 교단 창업의 역사를 조각해온 공타원법사님. 그 찬란한 빛을 거둔지 1년이 되었다. 모든 일에 정성스러웠고 지기를 싫어했던 어린 시절, 교회에서 개최되는 교리암송대회가 있게 되면 잠을 안자고 기어이 능숙하게 외워가는 열성, 웅변대회 때에도 1등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원기12년 열아홉이던 법사님은 아버지를 따라 대종사님을 뵈오러 총부에 오게 되었다. 당시 부친 조송광 선생이 기독교 장로로 대종사님께 귀의했으므로 원평 교회에서는 마귀에 빠졌다고 기도하고 야단이었다. 그래서 법사님은 대종사님께 항의하러 기세도 당당하게 왔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종사님 앞에선 똑똑이 소녀는 말문이 막혔고 부친 안광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3일을 머물고 난후 「전권」이라는 법명을 받들고 새 세계의 항해를 다짐하는 출가의 의지를 굳히게 되었다. 검정 무명치마에 앞치마를 두른 공양원이 된 법사님은 일원세계 개척의 역군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동분서주 순교의 정열을 태우기 시작했다. 초량교당 교무로 부임한 법사님은 부교무인 서대인 선생과 함께 삯바느질로 생활을 하며 오로지 법음을 펴기 위한 교화 일념으로 밤낮없이 뛰어야 했다. 어느 날 두 분은 순교에 나섰다. 자녀가 없이 내외만 사는 요인 댁 뒤따라가던 부교무는 대문을 들어서자 질겁을 하고 돌아서 나와 버렸다. 한 여름철  남편 되는 분이 런닝 바람으로 마루에 안장 있는 것이 아닌가? 교당으로 돌아온 대인선생은 얼마 후 오시는 법사님에게 『언니, 인제 오세요? 그 쌍사람들이던데 언니는 비위도 좋습니다.』 그 집에 들렸다온 법사님을 공박하는 화살. 어이없는 법사님은 대인선생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생제도 한다고 나선 사람이 그게 무슨 행동이야? 문수보살은 돼지 굴에 가서까지 제도했다고 하는데…. 그 지방 풍속을 이해하고 넘어서야지 외면하면 어찌되지? 호랑이를 구하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고 중생제도 하려면 중생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이야…….』 남녀에 대한 상도수녀라는 청결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십방을 일가로 한 진실로 인간답고 생명답게 살아온 일생. 점점 병세가 기울어 죽음을 예감한 법사님은 서대인 감찰원장에게 평소 충고 받았던 바를 털어 놓았다. 『사람들이 나를 허풍 떤다고 충고하는데, 내 눈에는 잘하는 것만 보여 한말이었네. 항상 꿈에라도 거짓말하지 말자는 신조로 살아온 내가 어찌 마음에 없는 말을 했겠는가? 잘한 일들이 감격스러워 진실을 말한 것이었네.』 드디어 창립의 초석, 공타원법사님은 5월24일 초연히 먼 길을 떠나셨다. 인생의 승리와 영광을 한 몸에 지닌 채 고결한 정녀의 법신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법과 마의 싸움에서 법이 이겨서 돌아가는 길에 승전고가 울리는 그런 열반의 노정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어디에 나셔서 법을 위해 살아가고 계시는가?
<사진> 생전에 설통으로 통하시던 공타원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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