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위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의 자리

지난 8월 13일 교정원 회의실에서 열린 제88회 임시 수위단회는 교도 법위사정계획안과 중앙법위 사정위원 보선, 그리고 교규 거진출진 규정 등을 심의 의결함으로써 법위 사정을 위한 기본 지침과 제반 계획을 확정하였다. 교도 법위사정 계획에 의하면 6년마다 전 교단적으로 실시하는 법위사정은 금년 9월부터 시작하여 주기의 해당년도인 명년 3월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그 시행 규정을 짜놓고 있다.
원불교에 입문한 사람은 출가나 재가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같이 법위사정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법위란 곧 신앙과 수행의 척도가 직접 그 사람의 사람됨(인격)이라는 실체로서 집약되어 나타나는 자리를 이름일 것이다. 원불교에 입문을 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원불교 신앙과 수행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재구성해 나가는데 그 소중한 뜻이 없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적인 소임을 저버리고서는 원불교인으로서의 자격을 말할 수도 없다.
인간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는 바로 오늘날의 원불교적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 재구성의 표준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에 있다. 이러한 표준으로 동정 간 일상생활과 일거수일투족에서부터 적용되어야 하고 상시와 정기의 훈련을 통하여 이를 더욱 체질화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수양의 힘 연구의 힘 취사의 힘으로 터를 닦은 인간 주체, 여기세 비로소 인간의 참되고 슬기로우며 바른 기틀은 정착된다. 항상 새로운 의식을 가꾸어서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며 전인(全人) 전생(全生)을 다하여 힘차게 살아가는 길이 또한 우리들의 끊임없는 공부와 수행을 통해서만 열려온다. 「법신불 일원상」신앙이 그의 위없는 이상이라면 삼학 표준은 바로 그와 같이 믿고 나가는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그와 같이 되어가고 그와 같이 살아가는 바르고 구체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그냥 단순한 결과주의적 수단이 아니라 그 이상과 그 현실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둘 아닌 하나를 이룬 진리적 기능이며 과정이다. 원만한 이상과 함께 그 뜻을 이루어 그와 같이 되어가는 바른 기능을 겸전한다는 것은 오늘날 누구나 다 가지고 살아가야 할 필수품처럼 그렇게 용이하게 얻어지는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이것은 오로지 원불교인이 아니면 지니기 어려운 하나의 특권으로서 지금 우리들이 사정하는 법위는 곧 진리의 그 뜻을 상징하는 것이어야 한다.
법위는 진리가 이르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이 자리는 그 어느 계층이 되었든 진리가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이에 진리가 머물러 있을 때에 법위는 법위로서의 제 위치를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가령 그 계층이 보통급이든 특신급이든 상전급이든 항마위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평등한 생명의 바탕으로서의 인격의 자연적 생장과정을 보여주는 시간적 질서로서 생명의 진화 속에 그 표준은 더욱 약여(躍如)하여야 한다. 법위는 행위의 기준인 30계행과 인격의 기준인 신분검사의 공부와 수행의 접촉과 체험으로서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러한 인생의 결산 작업은 자기 자신만이 바르게 가늠할 수 있는 자유의 척도이니만큼 그것은 마땅히 객관적 인식과 평가에서 반드시 타당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법위사정이 공명정대해야만 그 사람됨의 자체 인격이 또한 공명정대하여져서 이 세상에 바른 규범과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 같이 법위는 진리로서 이르는 자리이게 때문에 어떠한 편견도 자만도 독선도 그리고 어떠한 우월한 가식(假飾)도 자리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법위는 종교적 계급의 규정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가 계급으로 굳어지는 것은 그 종교의 근본 의지와는 다른 일종의 변태현상이며 퇴화하는 징조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법위는 종교인 스스로의 신앙과 수행의 총화적 결실이며 따라서 수행인의 자발적 보람이요 긍지인 것만은 사실이다.
법위사정은 법위사정의 규정에 따라서 시행하는 것이 제일차적 원칙이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정체를 바르게 보고 또한 그것을 판단하는 자율적 타율적인 그 공정한 마음의 기준이 철저히 융섭 작용하지 않고서는 이는 자칫 요식행위로 그치고 말 폐단을 낳은 소지도 없지 않을 것이다. 법위를 사정하고 그 결과를 공시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서 인생의 과정적 결산을 통하여 서로가 반성과 발분 그리고 성장과 향상의 자료를 삼고 그 계기를 마련하는데 없지 못할 일이다. 이 세상에 법위를 세우는 뜻은 곧 진리와 함께 살아간다는 도표를 증거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 도표는 진리의 등불로서 일체 중생과 더불어 그 보람과 행복을 같이 누리는 지극한 원력으로 길이길이 그 빛을 더해가야 한다. 마침내 법위는 무위로 자임하면서 스스로 진리적 사명에 나아가 헌신하고 봉공할 것을 기약하는 진인의 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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