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명과 원불교 <하(下)>

원불교 도덕은
도덕규범의 실천을 사은신앙에 결부
도덕적 주체로 인간 개조는 삼학공부
도덕규범의 금지 조목 30계(戒)와 당위 규범 22조목은 사은에 대한 보은 조목
<사진설명: 과학발달은 가공할 만한 살인무기를 생산하는가 하면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벗기는 놀라운 일을 한다. (사진은 보이저 2호가 잡은 토성)>
위에서 ① 규범윤리학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도덕규범의 정당성 혹은 합리성을 입증하는 일이라 했는데 원불교 도덕규범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두 가지의 다른 차원에서 주어진다. 나는 왜 사은에 보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답은 「입은 은혜는 갚는 것이 당연하다.」는 답이 나오는데 이것은 일종의 의무론적(Deontoligical)인 답이 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나는 사은에 보은이 되었는가의 물음에는 자명한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어떤 대상이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면 나는 그 대상의 은혜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며, 사은은 나에게 바로 그러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② 원불교의 도덕은 목적론의 입장에 서 있다고 했는데 이는 제생의세 하여 낙원을 건설하려는 것으로 사은에 대한 보은과 배은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밝힘으로써 원불교 도덕의 이상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보여준다. 즉 보은의 결과는 낙원 건설이며, 배은의 결과는 고해(苦海)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나는 왜 보은해야 하고 배은하면 안 되는가?」하는 질문에 목적론적 답이 나온다.
이와 같이 원불교 도덕 체계는 목적론과 의무론을 포함하는데 제생의세라는 뚜렷한 목적론에 입각해서 그 방법으로서의 도덕규범은 의무론적인 기초에 서 있는 것이다.
6. 그러면 원불교 도덕이 현대 물질문명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그 위기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밝혀야 얻어진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해한 물질문명은 우리 인간사회를 보다 살기 좋게 만들기 때문에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칼 그 자체는 무해(無害) 무익(無益)한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 들면 흉기가 되고 선인이 들면 보도(寶刀)가 된다. 물질문명도 그 수용하는 인간의 정신상태 인심의 도덕성 여하에 따라 인류에 해독이 될 수도 있고 문화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낙원 건설을 위해서는 물질문명을 선용할 수 있는 인륜 도덕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원불교 사상의 윤리는 바로 이를 목적하고 있다.
원불교 사상의 윤리는 사은에 대한 지은보은에 있는데 이 보은의 도가 실천되면 물질문명은 결코 악용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은의 도를 체 받아 실행하면 대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천지 보은의 강령인 응용무념의 도, 부모보은의 강령인 약자 보호의 도, 동포 보은의 강령인 자리이타의 도, 그리고 법률 보은의 강령인 정의 실천의 도가 두루 실천되면 유독성 화학 폐기물로 인명에 피해를 가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인류 역사를 중단할 가공할 무기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생산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소비자로서는 물질이 노예가 되어 지불능력 이상으로 수용품을 사들이고 파산 선고를 하는 등의 사회 문제도 없을 것이다. 천지의 응용무념의 도를 따르면 매사에 덕을 베풀어 써도 그 상에 집착이 안 되며 부모의 무자력자 보호의 도를 쓸 때 모든 약자들이 보호를 받게 되고 동포 간에 자리이타(自利利他) 법을 쓸 때 타해자리(他害自利) 하는 일이 없고 인도 정의의 공정한 도를 따라 정의만을 실천하는데 불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세상은 병이 없는 건전한 사회인 것이다.
7. 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불교 도덕은 도덕규범의 실천을 사은 신앙에 결부시켜 신앙생활의 주축이 되도록 한 것이 특색이며 원불교 도덕의 또 하나의 특색은 이 보은의 도를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주체로 인간을 개조하는데 있고 그 방법을 공부의 요도라 밝혔는데 삼학공부는 그 핵심이 된다.
인간의 본성은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그름도 없는 청정법신이나 경계를 당하면 마음이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그름이 생겨 자타간 온갖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에 탐욕이나 범법을 한다든지 진심(嗔心)이 동하여 흉기를 든다든 지는 모두 마음에 안정을 잃은 데서 일어난다. 또한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자타 간에 해독을 가져오고 말았던가? 또한 마음에 온갖 옳지 못한 생각이 얼마나 사회를 어지럽히고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까지 해독을 기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늘 본다. 원불교의 삼학공부는 심지에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을 없애서 고요하고 슬기롭고 바른 마음을 회복하여 해탈, 대각, 중정의 삼대력을 얻게 하는 훈련으로 이것은 낙원건설에 절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8. 이 삼학공부는 삼대력을 얻은 도덕 주체는 은의 윤리를 실천하는 능력을 얻은 것으로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는 서로 보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불교 도덕은 제생의세라는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방법으로서의 도와 그 도를 행하여 나타난 덕으로 요약되나. 이 도덕이 향상되면 물질문명은 선용되어 지상은 낙원으로 화한다고 믿는 것이다.

<철박·미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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