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서당아이들은 짓궂은 개구쟁이였다. 글 읽기는 하지 않고 장난에만 정신이 팔렸다 훈장은 애가 탔다.
 『얘들아! 이제 장난 그만하고 글을 읽자. 오늘은 「맹자」칠 권부터 배울 차례다 모두들 조용히 해!』
 그러나 아일들은 글 읽기에는 마음이 없었다. 훈장의 야단하는 말도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16세의 훈장은 비상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훈장은 자신의 두 다리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는 매로 자신의 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훈장의 다리에는 어느 듯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장난에 정신이 팔렸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너희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장난만 하는 구나. 그러니 못 가르친 죄로 내가 이렇게 맞아야 한다.』
 훈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계속 피가 흐르는 자신의 다시를 때렸다. 마침내 아이들은 잘못을 빌었다.
 『선생님,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습니다. 그만 고정하십시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16세의 훈장은 학동들을 꾸짖거나 때리는 일이 없이도 잘 가르칠 수 있었다.
 삼산 김기천종사는 1890년 2월 전남 영광에서 출생했다. 12세에 한문의 문리를 깨쳤고 16세 때부터 서장의 훈장이 되었다. 구인제자의 한 사람으로 교단 창립의 초석이 되었고 일찍부터 성리연마에 노력하여 대종사로부터 교단 최초의 견성인가를 받았다.
 스승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현실문제에는 약간 어두운 듯 하면서도 반야지가 번득였고, 사소한 시비이해에 구애되지 않았다. 웬만한 잘못은 용서했고 어떠한 사람도 널리 포용할 줄 알았다.
 1935년 9월 6일, 스승은 부산 하단교당(현 당리)에서 46세의 장년으로 열반했다. 그러니까 벌써 스승이 열반한 지 42주년이 되었다. 16세의 훈장으로서 스스로를 매질하여 이이들을 가르치고, 시비이해에 초연한 스승의ㅣ 인격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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