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님들의 숨결을 찾아
박주성

<사진설명: 선진님들의 피땀 어린 방언공사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한 오늘의 정관평 옥토.>
나는 여름 방학 때부터 성지순례를 벼르고 있었는데 10월 1일 뜻을 이루었다. 총부를 출발한 버스는 잘 포장된 길을 쾌적하게 달렸다.
회색의 엷은 구름이 높고 낮은 산봉우리와 황금벌판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10시 30분에 영산선원에 도착되어 따뜻하고 친절한 환영을 받았다.
원장님께 인사 올리고 성지순례를 계기로 더욱 더 법 있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을 받들었다. 수확기를 맞이하여 이곳은 원장님께서 친히 일손을 돕고 계셨으며 여러 선생님들과 선원생들도 일손을 바쁘게 놀렸다. 한데 어울려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에서 흥겨움과 법열이 샘솟는 듯한 인상을 느꼈다.
문득 대종사님과 선진님들께서 방언하시던 모습을 그려본다. 「저 사람들이 못 이길 고생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실은 낙이 진진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대종사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방언을 통해서 실증하신 대종사님의 이사병행의 법이 60여 년이 지난 오늘 정관평 옥토와 더불어 면면히 계승되어 영산에서 생생약동하고 있음을 보고 마음이 저절로 든든해졌다. 어찌 영산에서 뿐이랴. 원불교가 있는 곳에는 어데나 마찬가지겠지. 대종사님과 선진님들의 사(私) 없는 공심의 결정체 정관평 옥토에서는 콤바인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옛날 같으면 수십 명이 해야 할 분량의 일을 단 두 사람이 수월하게 해내는 것이었다.
물질문명의 혜택으로 우리는 옛날에 비해 몇 십 배의 편리함과 풍요함을 누린다. 그럼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여유 있게 풍요해졌을까. 나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개교 표어를 힘차게 외쳐본다. 성적(聖跡)을 돌아다니며 우리 일생은 신종희 교무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작년에 왔을 때 빈 터였던 대종사님 생가는 복원되어 아담한 초가집이 서 있었다. 선생님께서 「대종사님 어렸을 때 저 옥녀봉에 구름 잡으러 가셨다.」는 설명을 하실 때 마침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북풍에 실려 유유히 남쪽으로 흐르는데 정말로 옥녀봉 봉우리와 흰 구름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의 내 마음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다만 (이런 것을 이심전심이라는 걸까.) 곁에 있던 최명윤 교우와 마주 보며 함께 웃어 버렸을 뿐이다.
점심식사 후 1시 30분부터 중앙봉과 삼밭재와 옥녀봉을 다녀오기 위해 출발했다. 중앙봉에 오르는 길이 원기 61년도에 오를 때보다 더 넓어진 느낌이 들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지 순례 때마다 성적(聖跡)을 보며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 법열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대종사님과 선진님들의 위대한 자취를 보고 듣는 것은 지금 나의 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게 하고 그러면 속세의 때를 벗지 못하고 탐· 진· 치에 얽매여 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크게 반성하게 만들어준다.
신심 공심이 약한 자의 성지 순례란 여가를 이용한 관광일 따름이다. 진정한 의미의 성지순례는 대종사님의 법을 오롯이 믿는 진실한 제자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리 수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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