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과 화합
사회계급은 대립과 화합
강자와 약자는 가변적

자연 상태에 있어서는 아직 미완성의 결핍된 존재로서 태어나는 인간은 사회 안에서의 문화적인 공동생활을 통하여 삶을 영위하며 또한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때문에 인간을 고래로 사회적 동물이라 일컬어 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룩하면서 자기완성을 도모하여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인 자기완성과 삶은 언제나 사회적인 집단 즉 가정 사회 국가 등의 공동체를 전제로 하며 그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 안에서만 혹은 사회와 더불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사회를 떠난 인간이란 관념적으로는 상상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간이란 한자어도 사람들의 사이, 즉 사회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사회성원으로서 사회 분화에 따라서 각각 일정한 사회집단에 소속되어 거기에서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점유한다. 사람들이 점유하는 사회적 지위에는 일정한 사회적 역할이 따르기 마련이다. 적어도 성인으로서의 사회성원은 일정한 지위를 점하고 일정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정규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각각 점유하고 수행하는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역할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모두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런 뜻에서 모든 사회성원은 각각 불평등한 존재라고 할 수가 있다.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위계를 분석적으로 권력위계· 수입위계· 위세위계로 분류할 수 있다. 권력위계는 지배와 복종행동에 나타나는 위계이다. 집단과 조직에는 규제하며 지휘하고 영향을 주는 사람과 이것을 받는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행사되는 권력을 받는 사람이 있다. 수입위계는 수입과 생활기회를 향유하는 정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위계이다. 이것은 재산소유라는 하나의 측면에만 한정되지 않고 주관적인 사회 심리적 영역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계이다.
그리고 위세위계는 객관적으로 감지하기가 어려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위계이다. 권력 위계나 수입 위계가 구체적이며 실용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그 서열이 정해지는 위계인데 비하여 이 위세위계는 관념적이며 감정적인 차원에서 영향을 주는 위계이다. 예컨대 인간의 일상적인 사회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의 정도는 실용적인 위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관습이나 상징적 의미의 상하관계로서 과거의 경험에 근거를 둔 주관적 위계인 수가 많다. 나이 많은 어른, 아버지의 친구, 옛날의 상관, 어느 대학의 학장, 어느 회사의 사장, 무엇을 한 누구와 같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사회관계에서 상하의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 위세위계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사회적 관계위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수입과 생활기회를 향유하는 정도가 높은 사람, 위세위계에서 상(上)에 속하는 사람을 우리는 강자라 할 수 있고, 행사되는 권력을 받는 사람, 수입과 생활기회를 향유하는 정도가 낮은 사람, 위세위계에서 하(下)에 속하는 사람을 우리는 약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언제나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상의· 상대적(相依· 相對的)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마음 씀과 행동 여하에 따라서 강자로서 영원히 자기의 강을 보전할 수도 있고 강자로서 약자로 강급 할 수도 있으며, 약자로서 약자의 위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소태산은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은 강자가 약자에게 강(强)을 베풀 때에 자리이타의 법을 써서 늘 저 약자를 도와주고 인도하여 그로 하여금 자기 같은 약자가 되도록 북돋아주고어야 한다고 하고, 지혜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강만 남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장래를 볼 때는 마치 말라 들어가고 있는 물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놀고 있는 올챙이와 같다고 하였고, 또 약자가 강자가 되는 길은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대하는 사람마다 잘 화하며, 늘 하심(下心)을 주장하여 남을 높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특히 진리를 믿고 수행에 노력하며 남 잘 되는 것을 좋아하여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여 가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로 사회 위계를 이루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경쟁적 대립의 관계와 협동적 화합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타자에 대해서 언제나 대립의 관계만 갖는다든지 또는 언제나 화합의 관계만 지속할 수는 없다. 사회생활에서는 언제나 이 대립과 화합의 두 관계를 아울러 가진다.
경쟁적 대립의 관계에는 진보발전을 예약할 수 있는 바람직한 것과 불안과 재화를 불러  들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대립경쟁의 관계에 있는 인간을 독일의 생태학자인 로렌츠는 <문명화한 이간의 8대 죄>라는 저서에서 불안에 쫓기고 있는 동물과 다름이 없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대립의 관계보다 협동적 화합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태산도 인도품 24장에서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마음을 화합하며 각각 그 도를 다하면 이 세상은 영원한 평화를 이루려니와 만일 그렇지 못하면 강자와 약자가 다 같이 재화를 입을 것이요 세상의 평화는 영원히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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