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는 법 없어
「전무출신 위해 쓸 돈인데 내가 써버리면 어쩌라고……」 의사 왕진 만류
열반 이틀 전에도 제자 건강 염려
환후 중에도 진지상 물리지 않아

○… 김윤중이 여쭙기를 전무출신의 직업을 대의적으로 말할 때 「포교사」라 하면 무방하겠습니까?
답하시기를 「교화사업」이라 하라.
○… 여쭙기를 중생은 십이인연으로 수생하여 윤회하는데 부처님은 어떻게 합니까? 부처님은 업식이 없으므로 중생과 같이 한 가지 단계를 밝지 않고 수생하게 되는 것입니까?
답하시기를 「중생은 십이인연의 수레바퀴에 끌려서 생을 받게 되는데 무명으로 행을 지어 습관성인 식으로써 수생을 하는 의미에서 업감연기에 해당하고 부처는 무명의 행이 아니요, 명의 행이며 습관적 식이 아니요, 지혜로써 익힌 청정식으로 입태 하게 되니 진여연기에 해당된다.
그리하여 십이연기가 바로 진여연기가 되는 것이 부처의 수생이다.」
○… 시자가 대종경 성리품 22장을 생각하며 묻기를 「도가에서 공부하는 데 혹은 큰 집을 짓고 혹은 작은 집을 짓는다 하는데 어떠한 것이 큰 집이고 어떠한 것이 작은 집입니까.」 이에 대하여는 못 들으신 듯 아무 답을 아니 하시었다.
○… 이인의화가 영문이 열린 과정을 여쭘에 한 사람이 놀라며 그것은 허령이 열려서 뒷날 사도에 떨어지기 쉬우니 주의하라고 하는데 정산종사께서는 파안미소하실 뿐 아무 말씀이 없으시었다.
○… 변중선이 6· 25 때 서울에서 도보로 피난 오면서 총부에 들러 정산종사를 뵈옵고 사뢰기를 「이리서 자고 삼례와 전주를 거쳐 광주로 가야겠습니다.」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리서는 못 자고 삼례 가서 자게 될 것이며, 광주로는 못 가고 장수 가서 피난하겠는데 그러면 괜찮 하겠다.」고 하시며 현 동화병원 자리까지 전송해 주시면서 「앞으로 와서 살 곳이니 착실히, 두루 살펴보고 가라.」하시었는데 변중선은 그 때 이리에서는 친구가 없어 못자고, 삼례 가서 자게 되었으며, 이북의 장갑차가 전주를 거쳐 광주로 가는지라 광주로는 못 가고 장수로 가서 피난을 하고 후에 전무출신을 하게 되었다.
○… 김홍철이 영산 재방언 공사를 맡아서 진행할 때 복잡한 심경을 털어 놓으려고 조실에 들어오면 벌써 알으시고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시기를 「말하지 아니해도 내가 다 안다. 말하면 내 병에 해로와…」하시며 시자에게 「거 무엇 좀 내 놓아라.」명하시어 다과 등을 대접하게 하시고 그것을 들면서 자연히 걱정이 해소되고 할 말이 없어지도록 하시었다
○… 영산 재방언 공사를 할 때에 우선 자비 부담으로 공사를 완공해야 전라남도 도청에서 지원금이 나오게 되었다.
당무자인 김홍철은 그 때 공사비를 마련해야 되는데 도저히 길이 없어서 재방언 공사의 총재이신 정산종사를 뵈오러 장수까지 찾아 왔다.
김홍철이 사실을 보고하고 공사비를 마련하여 주실 것을 호소하니 「나만 믿고 가면 되니까 하늘같이 믿고 가‥.」하고 달래어 보내시었다.
김홍철은 다시 더 말을 못하고 총부로 가서 뜬 눈으로 3일을 지내면서 연구한 끝에 빚 얻을 방안이 떠올라 무이자로 빚을 얻어 공사를 마친 후 도청에 가서 지원금을 받아다가 그 빚을 청산하였다.
그런 후 며칠이 아니 가서 4· 19 혁명이 났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더라면 4· 19 후에는 그 지원금을 타기가 어려웠을 것인데 참 희한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 원광 여자 중· 고등학교 초창기에 교사도 마련하지 못하여 여기저기 교단의 집을 빌려 쓰며 애로를 겪고 있을 때 정성숙 교장을 오라 하시더니 「너희 학교가 발전하려면 중앙대학교 이리 분교를 차지해야 한다. 너희 학교는 앞으로 외부 힘을 얻어서 클 것이다. 어찌 하든지 그 학교 이사장을 만나서 교섭해 보아라. 이런 말을 하면 저 노인네가 실정 모르고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거야.」하시며 간곡히 당부 말씀을 하시었다.
이 때 이리 역전에 자리 잡은 중앙 대학교 이리 분교는 6· 25 직후에 설립한 것으로 나날이 발전하여 여기서 수입된 것으로써 서울 본교의 시설을 확장해 나간다는 말이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그것을 차지해 본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그 후 5· 16 혁명이 나던 해 7월에 교장을 부르시더니 「오늘 신문을 보니 중앙 대학교 이리 분교가 철수를 한다고 했더라, 그러니 오늘 밤에 바로 올라가서 책임자를 만나 보아라.」하고 거듭 챙겨 말씀하시었다. 이 말씀에 따라 교장 정성숙과 교사 박삼순, 그리고 원광고등학교 서무주임 이건춘 등이 서울로 올라가 이공주와 함께 중앙대학교에 가서 학원재단 원불교에서 왔다고 말하며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임영신은 「원불교 재단에서 나 만날 일 없는데….」하고 나가 버리었다.
정성숙 교장 일행은 이 때 헛걸음을 하고 난 다음 여러 방면으로 임영신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 명의로 중앙대학교 이리 분교를 매입하기로 계약을 하였다. 이 계약 후에도 여러 가지 애로와 난관이 거듭되었으나 마침내 그 건물을 매입함으로써 학교는 계속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 때의 당무자들은 「우리 학교는 정산종사의 원력으로 이루어졌고, 성자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 교무들이 나를 못 만난다고 섭섭히 알지 마라. 교세가 확장되고 교도 수가 많아지므로 두루 다 챙기지 못하겠으니 내가 챙기거나 못 챙기거나 대중이 알거나 모르거나 어느 곳에서든지 그 있는 자리에서 공부와 사업을 착실히 잘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아니 찾아오더라도 참으로 신심이 있고 나와 마음이 연한 사람이다.
○… 환후 중에도 진지상을 올리면 한두 수저라도 들으시며 「안 먹었다 하면 문안 오고 시끄러우니 이름 지어 버리자.」하시거나 또는 못 잡수실 형편이어도 「못 먹겠다.」「안 먹겠다.」아니하시고 「다음에 먹으련다.」하시었다.
○… 열반에 드시기 한 해 전 여름에 동산 선원에 계실 때 의사를 부르려 하면 만류하시므로 말씀드리지 않고 내진을 청하면 「너희들이 집 팔아서 주려느냐?」하고 꾸중하심에 시자들이 「집 팔지 않아도 돈 있지 않습니까.」하고 사뢰면 「전무출신들에게 쓰려 했는데 내가 다 써 버리면 어쩌려고…」하고 말씀하시었다.
○… 열반 2일 전에 지성인이 뵈오니 보시자마자 「너희 아버지 건강은 어떤지 모르겠다.」라고 염려 말씀을 하시었다. 지성인은 지금도 「그처럼 편찮으신 중에도 제자들의 건강만 염려하신 자비심을 생각하면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연재를 끝내며
정산종사 법문과 일화는 이번으로 마치려 합니다. 그동안 자료를 주시고, 읽어주시고, 격려와 지도를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청에 의하여 그동안 발표한 것과 그의 자료를 한 데 묶어 명춘에나 책으로 엮어 보려 합니다. 법문, 일화, 서한, 휘호, 사진 등 자료가 있으면 교화부에 제공하여 주시면 복사 후 원본은 바로 보내드리겠사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 사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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