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스로 하는 혼에서

세계는 하나 인류는 한 가족 개척하자 일원세계!  이것은 이미 우리 교단이 개교 반백년대에 제시한 교단적 방향으로서 인류의 역사적 지표를 보여준 것이다.   이보다 앞서 우리 원불교는 그의 궁극적 진리관으로서 시방이 한집(시방일가)이라는  것과 사새이 한 몸(사생일신)이라는 큰 이상을 불밝혀 주었다.   이러한 이상이나 진리관은 물론 우리 원불교가 최초로 발견하고 계발한 것이 아니라 유사 이래 온 인류의 보이지 않는 공통된 꿈이었고 모든 종교 일반의 한결같은 이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와같은 인류의 꿈과 종교의 이상은 이 역사상에 단 한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온 인류는 상극과 전쟁으로 지옥살이를 되풀이 해온 것이다.   이와같이 이상과 현실이 다르고 생각과 행동이 판이한 것은 도덕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엄청난 자기 모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자기 모순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극도에 달하고 있다.   만유에 뛰어난 존재로서 자칭 영장이라 불리우는 인류는 그렇게도 뛰어났다는 과학적 두뇌를 작용하여 정교한 살상무기를 개발해 내는데 온갖 힘을 소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구를 잿더미로 만들고 급기야는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종말적 대전이 발발하는 위기를 겪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이렇게 될 때 종극적으로는 그 누가 그 누구를 죽이는 결과이겠는가?   가장 슬기롭고 현명하다는 인류로서 어찌하여 이다지도 지지리 못나고 바보스런 장난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극도의 위기의식은 마침내는 근원적으로 자기에게 돌아오고 전체로서 자아를 대표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꿰뚫어 보는 새 생명과 새 역사의 계기로 심화되고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원불교가 이 땅에 출현한 것은 자고 이래로 우후죽순처럼 발생한 군중 종교에 그 수를 하나 더 보태기 위하여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어디까지나 교단을 위한 절대교단주의적 집단일 수 없음은 여기에서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다.   원불교 교단은 새 진리와 새 생명, 새 역사의 그 하나되는 뜻을 이루는 하나의 공동체(일원주의)의 기점으로서 개벽회상으로서의 존재의의를 다지는 것이다.   일원은 세계는 하나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궁극적 진리의 표상으로서 그 진리의 뜻으로 하나되는 세계와 한 가족의 인류가 되지 않고는 이 세계와 인류가 다같이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일원세계의 진리관은 이제 요원하고 막연한 이상이나 꿈이 아니요, 바로 오늘날 우리들 모두에게 박두한 절실한 생명의 문제이며 윤리의 차원으로서 구체적으로 마주치게 된 현실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요즈음 간간이 심상치 않게 번지고 있는 인간가족이다 혹은 지구촌이다 하는 낭만적인 언어는 인류의 밝은 미래를 예시하여 주는 듯하여 매우 바람직스런 현상임에 틀림없으며, 따라서 인간윤리의 비중이 전례없이 높아가는 것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아직도 국가주의적 친족주의적 형향이 강도를 보이면서도 그러한 주의 주장들이 아무렇게나 저하고 싶은 대로는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저마다의 국가나 민족주권의 행사라 할지라도 인류 세계 전체의 공존원칙에 장애들이 되고 그의 공익을 해칠 때에는 세계의 정의 앞에서 저들은 설 수 없게 되어 마침내 고립을 면치 못한다는 것은 익히 보고 들어서 아는 상식이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또는 교단주의가 반드시 옳지 않다는 논리에서가 아니라 그들은 마땅히 그 찌들고 낡아빠진 편견과 탐욕  독선  오만을 버리고 스스로 서야 할 정당한 입장을 가리어서 인류복지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하나의 세계 건설에 봉공하는 겸허한 일꾼으로서의 자각과 성장이 요청되고 있는 이때인 것이다.
어떠한 힘이나 강제로써도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우리네 인간 세상의 일이다.   더구나 인간에게는 스스로 하는 자유의 혼이 있다.   이러한 스스로 하는 뜻을 억압하는 것은 마치 저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아서, 그렇다고 자연의 생장은 중단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네 정신의 생리라는 것은 이보다도 훨씬 뛰어나서 자연과 우주 그 어떠한 절정마저도 떨치고 넘어서 버리려는 기질과 의지를 갖추어 가지고 있다.   우리들은 저마다 이 스스로 하는 뜻을 스스로 불러내고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 뜻과 뜻이 서로 만나주지 않고는 하나가 될 수 없다.   너와 나, 나와 일체만유, 그리고 인간과 우주 세계가 조화되어 혼연일체를 이루는 곳에서 하나되는 기쁨이 솟고 하나되는 기쁨에서 오로지 하나되는 창조가 있다.   하나되는 창조야말로 하나되는 보람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 기쁨 창조 보람은 스스로 하는 혼에서 그 하나가 되고자 하는 제 스스로의 뜻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들은 오로지 너와 나, 나와 일체만유가 하나가 됮 않으면 설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다.   이 하나되는 기쁨과 하나되는 창조와 하나되는 보람 그 자체의 기능으로서 오늘날의 종교는 마땅히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될 때다.   새해의 나아갈 방향도 여기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