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어라
봄이 오고 있다...창문을 열어라...눈부신 햇살을 반갑게 맞아 들이자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1982년
발전의 원동력은 화합과 단결 정의의 표준 잃을 때 갈등 생겨
때로는 손해볼 줄

아마 지금쯤 산골 시냇물은 얼었다 녹았다 하며 졸졸 흐르고 있을 것이다.   조그마한 시냇물은 흘러서 어디로 가나?   결국은 망망대해 끝없이 넓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하나가 될 것이다.
시냇가 돌 틈 사이에는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쯤 그 얼어붙은 돌 틈 사이로 버들강아지가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아! 봄이 오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높은 산위에 쌓인 눈도 속으로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얼어붙은 땅속에서는 새 생명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또한 앙상한 나뭇가지 잎 떨어진 자국에서는 새싹 돋아나는 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우렁찬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다.   1982년 새해의 광명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창문을 열어라.   맑은 공기와 눈부신 햇빛을 반갑게 맞아들이자.
새 해 벽두부터 우리 사회에는 여기저기 창문 여는 소리가 우렁찬 합창으로 들려오고 있다.  37년만의 야간통행 금지 해제, 중  고등학교 교복 자율화와 머리형 자율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멜로디로 우렁찬 교향악인가?   거기다가 새 해에는 불황의 긴 터널에서 허덕이던 우리 경제가 활성화 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마음의 창문을 열어라
우리나라는 올 해부터 제5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또한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그 준비를 위한 첫 해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활기에 넘쳐 있다.
우리 교단도 올 해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8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아시아 종교인 평화회의준비를 위한 첫 해가 된다.   아시아 종교인 평화회의를 우리 교단에서 주관하여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기로 된 것은 대산 종법사께서 여러해 전부터 주창해 온 세계 종교 연합운동이 그 결실을 향하여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금년 11월 총회에서는 종법사 수위단원 선거가 실시되고 교정 감찰 양원장을 비롯한 교단 중요간부진의 개편이 뒤따를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올해이므로 재가 출가며 선진 후진이 한결같이 마음의 창문을 열고 화합과 단결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인간이란 개성이 각각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조그마한 일에도 서로 맺히거나 오해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화합 단결이 매우 어려운 것이고, 어떠한 사회가 잘되고 못되는 것은 화합 단결을 잘하고 못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교단은 창립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른 어떠한 단체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화합 단결을 잘 유지해 왔고, 교단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도 역시 화합 단결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982년 새 해와 더불어 다시 한번 재가 출가 선진 후진간에 화합단결을 새롭게 다짐하고 싶은 것이다.
반야심경이 주는 교훈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개공이란 말씀이 있다.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이 다 공했다는 것이다.   오온이 다 공했다는 것을 모르고 형상있는 것이나 분별심에 집착하기 때문에 천만 고뇌에서 헤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이 서로 화합 단결하지 못하고 불화 대립하는 원인도 역시 오온이 공했다는 것을 모르고 눈앞의 현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만약 오온이 공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대립하고 불화하고 분열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한 가정에 있어서 부자 형제간에도 현실에 집착하다 보면 불화하고 투쟁하게 되는 것이다.   오온개공의 입장에서 우리 각자를 살펴 보는 것이 화합과 단결의 지금길이 될 것이다.
지도자의 아량
중국의 위문후가 신하들과 함께 술잔치를 벌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신하들에게 자신에 대한 평을 한마디씩 하라고 했다.   대개의 신하들이 문후의 지혜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임좌의 차례가 되자 왕께선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중산 땅을 얻었을 때, 동생을 태수로 보내지 않고 태자를 보낸 것은 잘 한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문후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나타났다.   임좌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음은 적황의 차례였다.   왕께선 어진 분입니다.   왕이 어질면 그 신하가 바른 말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금 임좌가 한말은 옮은 발입니다.   그래서 왕께선 어진 분입니다.   위문후는 기뻐하면서 임좌를 다시 불러 오도록 할까? 적황은 불러오셔야 합니다.   충신은 그 충성을 다하고 죽음을 피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임좌는 아마 아직도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과연 임좌는 문간에 서 있었다.   임좌가 들어오자 문후는 계단 밑까지 내려가 맞아들이며 그를 윗자리로 모셨다.
위문후는 아량있는 군주였다.   지도자는 듣기 싫은 소리도 들을 줄 알고, 때로는 자기를 반대하고 비판하고는 사람을 중용할 줄도 아는 것이다.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항상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한다면 그는 이미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란 열가지 중에 아홉가지를 잘하고 한가지를 잘못했을 경우, 아홉가지 잘한 것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잘못한 것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조 숙종 때 어사 이관명은 왕에게 듣기 싫은 직간을 해서 파면될 줄 알았으나 삼계급이나 특진해서 당장에 호조판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설사 지도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귀에 달콤한 소리가 아니라 비판하는 소리라도 들을 줄 아는 포용력이 있어야 서로 화합 단결할 수 있는 것이다.
칭찬할 줄 아는 비판자
사람이란 아무리 큰 공부를 했다 하나 자기를 칭찬하면 듣기 좋아하고 비난하면 싫어하는 것이다.   설사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삶은 좋은 것이요 죽음은 싫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돌아 앉는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만물을 살리는 것은 서북풍이 아니라 동남풍인 것이다.   사람이란 서로 비난하는데서 불화가 생기고 칭찬하는데서 화합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아홉가지를 잘못하고 한가지만 잘했다 할지라도 잘못한 것은 덮어두고 잘한 것을 칭찬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부처님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비난보다 칭찬이 더 좋은 것이다.   남의 큰 잘못도 이해해 주고, 조그마한 장점도 칭찬해 주는 것이 화합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특히 비판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일수록 남을 칭찬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자신이 직접 두어보면 잘 안되지만 옆에서 훈수하는 입장이면 이것 저것 잘 보이는 것이다.   남이 하는 것을 보면 잘못이 쉽게 보이지만 자신이 직접 해보면 잘못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 것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먼저 베풀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서로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데서 화합이 오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데서 오해가 오는 것이다.
손해 볼 줄도 아는 사람
손해 볼 짓 하지 말라 이 말은 필자가 여러 차례 들은 말이다.   과연 인간은 손해 볼 짓을 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인가?   물론 인간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그마한 이익도 남에게 양보할 줄 모르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때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손해 볼 짓 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정의롭게 살아라는 말은 한번도 듣지 못했고 손해 볼 짓 하지 말라는 말은 여러번 들었다.
그러나 사람은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표준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이익 보는 것이 될 때 거기에는 대립과 투쟁이 있고 모략과 중상이 뒤따르는 것이다.     자리이타로 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땐 자해타리를 택하라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분명히 가르쳤다.   서로가 손해 볼줄도 아는데서 화합과 단결이 싹트는 것이다.  
1982년, 올해에는 우리 모두 마음의 창문을 열고 화합과 단결의 합창을 힘차게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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