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통신 강좌로 속깊은 공부를
시어머님 장례식이 일원의 품안에 안겨 줘

원기 63년 3월 관혼상제 간소화 법령이 내린지 얼마 안돼 시어머님께서 열반하셨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고향인 여수에 있었고 남편(법명 김원파)은 교육장으로 계셨었다.   처음으로 기관장 집의 장례식이니 어떻게 하나 하고 주목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무난히 비난 안받고 장례식을 마쳐야겠는데 고민이 되었다.
그때 4촌 시누님이 교당에 다니고 있어 원불교식으로만 하면 사회 모범이 될 것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원래 장노님 따님이셨고 신앙도 두터우셨다.   다만 아버님께서 철저한 유교신자시라 조석으로 사당 참배, 조상님 산소 참배와 제사 모시는데 주력 하셨으므로 어머님은 교회에 나가시지 못하셨다.
또한 2남 1녀인 우리 형제중 시동생은 교회 장로, 동서는 집사, 시누님도 교회를 나가셨으니 반대하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 살아 계실 때 교회에 못가셨으니 영혼이라도 교회식으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의 허락을 받고 장남부부의 의지대로 교당식으로 거행하게 되었다.   실은 우리 부부도 전에는 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전근한 되면 이사하는 날부터 각 교회에서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광주에 있을때 아버님이 오셔서 불호령을 내리셨다.
너희들은 제사 안모시려고 교회에 나가느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 우리는 특별한 효도도 못하는 주제에 부모님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의 길이라 생각하였고, 실지로도 교회가 우리 개성에 맞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런일이 있은 5년 후 장례식을 맞게 된 것이다.
원불교식으로 꽃을 꽂고 독경을 하며 접대는 다과로만 하니 얼마나 신선하고 간소화한 의식이었던가?   그리하여 초재에서 종재에 이르기까지 정성껏 마치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아 그 후 유지들 댁에서도 장례식을 교당에서 많이 거행하게 되었다.
이런 만남으로 나는 교당을 다니게 되었지만 신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미안한 마음에서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좋았고 교무님의 법설이 감동적이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똑같은 기도가 적어서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일요일에 주부가 집을 비우니 자꾸만 눈치보기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법설은 좋은데 성가가 한옥타브를 낮추어 부르기 때문에 염불도 아니고 성가란 실감이 안났다.
이때 결심을 했다.   남편을 인도해 성가지도를 하시게 하면 일석이조라고.   그래서 법설을 듣고오면 저녁 식사때 기분을 보아 되풀이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매주 마다 법설을 옮겨 들려 드리게 되었고 어느날에는 성가를 가지고 피아노 앞으로 가 남편에게 불러 보시도록 하면서 교당에서는 지도할 사람이 없어 성가가 제대로 불러지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나는 이때 남편에게 신이내린 좋은 성대 대중에게 들려 주시고 지도 하시라고 주신건데 그냥 묻혀 두실거요?   법당에 나오시어 법설도 듣고 노래지도도 해 주십시요라고 간청을 하였다.   그러나 일요일이면 주례니 행사니 출장이니 하여 1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어느 봄날 드디어 함께 교당을 나가게 되었고 처음 접하는 우리 성가를 지도하시게 되었다.  우뢰같은 박수소리 노래가 달라지네 꼭 교육장님이 나오시어 지도좀 해주셔야 겠네   선배언니 친구들의 하는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이렇게 하여 남편은 교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목포제일여고로 발령을 받게 되어 이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특별한 공무가 아니면 교당에 나가게 되었으며 성가지도도 계속 하시게 되었다.   특히 교무님 법설은 시원해서 자기 피부로 사무치게 느끼고 호흡할 수 있어 자기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반성할 기회를 갖게 돼서 참 좋으시다면서 모든일에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다.
나 역시 백만군사 얻은 것처럼 마음놓고 교당에 나갈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 아이들은 아직 신앙생활을 안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귀의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언제인가는 꼭 이 회상에서 공부하는 일군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 나는 좀더 속 깊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교화부에서 교리통신강좌가 나와 공부할 기회가 부여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나 처음엔 문제가 어려워 1권을 받으면 며칠을 두고 끙끙거리다 겨우 보내고 나면 학교 시험치룬 기분이었다.   그 해답이 오면 또한 여러 문제가 틀려있어 이 때문에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다.
17권째 솔성요론을 할 때는 심금을 울릴 정도로 좋은 말씀이 많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잘 못된 일이 있으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필 것이요  군자 대인 성현 부처는 자기를 살펴 공부의 부족, 정성과 공경의 부족, 학문과 기술 진심 공심의 부족을 느끼고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열리지 못한 사람은 잘못을 남에게 탓하고 허물을 이웃에게 전가하며 마치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한다.
그러나 참다운 공부인은 큰 자리 남의 허물도 오히려 내 허물과 같이 생각하며 그 무마에 힘쓰고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조목은 쉬운 것 같으나 실행은 어려운 것.   나의 공부표준을 삼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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