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是故) 수보리(須菩提)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 응여시생청정심(應如是生淸淨心)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모든 도를 닦고 행하는 사람이 응당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말 것이니 스스로 내가 잘하고 내가 안다 하여 마음속에 배우지 못한 이를 업신여기면 이 청정한 마음이 아니다. 자기 성품에 항상 지혜를 내어 평등한 자비심을 행하며 내 마음을 낮추고 일체중생을 공경함이 닦아 행하는 사람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다.

만약 스스로 그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맑고 깨끗함에 애착하여 마음 마음에 머무른 바 있으면 곧 법상(法相)에 집착함이다. 색을 보고 색에 착하여 색에 머문 마음을 내면 곧 미혹한 사람이요, 색을 보되 색을 여의어 색에 머물지 아니한 마음을 내면 깨달은 사람이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은 구름이 하늘을 가린 것 같고, 색에 머물지 아니하고 마음을 내는 것은 허공에 구름이 없어 해와 달이 항상 비침과 같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은 곧 망녕된 생각이요, 색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은 곧 참된 지혜니, 망녕된 생각이 나면 곧 어둡고, 참다운 지혜 비치면 곧 밝을 것이다. 밝으면 곧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고, 어두우면 곧 육진(六塵)이 다투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깨끗이 청소하고 장엄을 하여 응용할 때에도 주착한 바 없이 그 마음을 쓰라는 것이다. '내라(生)'하는 것은 그 마음을 '쓰라(用)'는 것이다.

'수보리(須菩提) 비여유인(譬如有人) 신여수미산왕(身如須彌山王) 어의운하(於意云何) 시신(是身) 위대부(爲大不) 수보리(須菩提)-언(言) 심대(甚大) 세존(世尊) 하이고(何以故) 불설비신(佛說非身) 시명대신(是名大身).'
색신이 비록 크나 속마음에 작다고 헤아리면 큰 몸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속마음에 크다고 헤아려야 이를 곧 큰 몸이라 이름할 것이다. 지금까지 불토장엄과 청정심을 이야기하셨다. 이와 같이 장엄이란 그 규모가 다른 것이다. 눈꼽만한 방을 자기 것으로 알고 장엄하는 것과 수미산만한 장엄은 다른 것이다. 장엄이란 그런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미산한 몸이라는 것은 불신이다. 법신이다. 형상 없는 큰 몸, 바로 그러한 법신의 인격이다.

만덕산훈련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