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 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

경성여고보를 졸업한 신여성으로서 여성교무 제 1호가 되신 융타원 김영신 대봉도가 출가하시어 익산 총부에 근무할 당시, 대종사께서 문답 형식으로 설하신 법문이다.

사람이 생활을 해나가려면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없으면 불편할 뿐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시로 한 때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건이 있으니 바로 '의·식·주'이다. 그러므로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근본이 된다.

마찬가지로 공부 방면에 있어서도 학교에서 여러 가지 과목을 배우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실생활에 간혹 쓰일 뿐이다. 그러나 행·주·좌·와·어·묵·동·정 간에 항상 사용되어 '의·식·주'와 같이 긴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각자의 '마음'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모든 일에 간여하지 않는 바가 없어서 마음의 동작 여하에 따라 일체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만물 가운데 최고의 영(靈)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가치의 생활을 영위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만법의 근본이 되는 그 '마음'을 단련하여야 한다. 즉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아니할 만한 정신의 수양력을 얻으며,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할만한 사리에 연구력을 얻으며, 불의는 능히 버리고 정의는 능히 취하여 취사에 실행력을 얻어야 한다.

우리의 삼학(三學)과 팔조(八條)의 공부는 오로지 이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다스리는 길이다.(월보 40호, 송도성 수필 법문 참조) 그러므로 마음 닦는 공부인 도학(道學) 공부가 모든 학문과 기술의 주인이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며 이를 항상 명심하라고 강조하셨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신(修身)과목이나 도덕과목은 인간 상호간에 마땅히 행할 것을 가르치긴 하나 지역이나 시대를 따라 다르며 진리적인 근거가 희박하여 마음의 참된 경지를 다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나마 현대에 이르러서는 수신과목도 사라지고 도덕과목도 중요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는 실태다.

오늘 날 뉴에이지 운동이니, 웰빙이니, 또는 마인드 콘트롤, 심리치료 등 마음을 소재로 하는 연구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의 일시적인 안정과 평화는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마음의 구경처에 바탕한 원리를 밝히진 못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과학이나 학문으로는 수신의 참다운 공부를 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마음 닦는 공부를 주장하는 도가(道家)가 아니면 그 참된 경지를 다 발휘할 수 없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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