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사와 꽃과 파랑새 이 건 직(남중교당 ㆍ 부교무)
자신과 내 이웃을 모두 사랑해야
인류평화와 행복이 약속되는 것

원예사가 있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단 한 번의 사랑을 했었는데 실패했다. 그림에 빠져 40살이 되도록 독신이었던 그에게 그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굳이 실패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그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아내의 죽음은 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벼렸다. 그림에 대한 열정,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었다. 그는 다시 붓을 들지 않았다. 누구도 사랑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공허한 채 시간이 녹슬어 가고 있었다.
몇 해 뒤 그는 꽃을 기르기 시작했다. 시장에 내다 팔 목적이 아닌데도 그의 아파트 조그만 실내는 소규모 화원인 듯 수많은 꽃들로 가득 찼다. 여러 종류의 장미와 국화, 글라디올러스, 수선화, 히아신스, 시클라멘, 카네이션, 튤립 … 캔버스에 받쳤던 모든 열정이 꽃에게로 옮겨진 것 같았다. 아내에게 쏟았던 사랑도 함께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파트이 전 주민들이 꽃을 구경하기 위해 수시로 초인종을 눌렀고, 돈을 내 놓으며 팔거나 분양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꽃들에게 알맞은 물을 주고, 알맞은 바람을 쏘이며, 알맞은 자양분을 나누어 주는데 전념할 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꽃을 기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원예 사전이나 꽃 기르는데 필요한 온갖 서적들을 탐독하였기 때문에 꽃에 관한 한 대단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꽃들이 말라 비틀어져 가기 시작했다. 까닭모를 일이었다. 밤낮 꽃을 치료하였는데, 이미 족은 꽃송이는 가위질했고, 약을 분사하여 격리시켰다. 그리고 다른 때보다 더 꽃에 관한 서적들을 뒤적거려 원인을 캐내려고 애썼다. 꽃을 보는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날도 그는 전염병이 나돈 듯 죽어가는 꽃들을 손질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때 한 마리의 파랑새가 날아 들어왔다. 파랑새는 동화속의 새처럼 말을 하였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 대요」 그리고 그 새는 날아가 버렸다. 꿈이었다.
화가 아닌 원예사는 자기가 기르는 꽃을 위하여 소비한 시간만큼 행복해지길 원했고, 또 그 꽃들은 아름답게 피어날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니만 자기의 아내와 꽃들에게만 빠져있었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몸만큼 자기 외의 것은 사랑하지 못했음이었다. 아무리 깊은 애정을 쏟았을지라도 자기 몸이 소중한 줄을 모르는 사랑은 자기외의 것들에게 사실상 진실 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형식이며 일시적인 만족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고들 말하는데 그 중에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인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평화와 행복이 약속되어진다. 원예사와 꽃과 파랑새의 조화로움이야말로 생의 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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