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일 맡은 시아버님 회장
어린이, 청소년 교화가 근본

우리 교도들은 회장님을 아버님이라고 부릅니다.   교당일은 물론 각 개인의 가정사를 의논하면 친정아버님처럼 자상히 알려 주시지요
춘천교당 김종암 교도회장을 두고 교도들은 아버님이라 부른다고 얘기한다.
교당법회의 사회에서부터 크고 작은 교당건물 관리, 교도들의 뒷바라지 등 남춘천교당 재가교무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김법진 교무는 극구 칭찬한다.  
김교도회장은 1909년 10월 춘천시 효자동에서 태어나 체신업무(철도우체국)의 직업 공무원으로 정년까지 맞으며 금년 74세에 이르렀다.   김회장이 원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병리학을 전공한 이병윤(민생병원, 현 종법실 이성국교무 형님) 선생이 교전을 선물하며 훌륭한 책이니 읽어 보라고 건내 준것이 결정적인 인연이 되어 원기57년 6월 입교했다.
입교 하기전 원불교가 어떤 종교라는 것은 조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일제 때 발생한 잡지 <생명의 실상>에서 읽은 기억이 있으나 관심과 호감을 갖지는 못했지만 재래불교와 특히 선에 대하여 꾸준히 보아왔다.   이로 인해 종교에 대한 눈이 떠졌다.   그러던 중 해방이 되면서 잡지 <생명의 실상>이 보급 중단되니 무관심한 상태로 지내 오면서 마음속에는 어떤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기독교 천주교 소양사의 절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으나 마음에 흡족치 못했다.
이때 병윤씨가 교전을 전해 주었던 것이다.   이 계기가 입교로 연결됐다.
요즈음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경전을 봉독하지만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예요.  그래서 봉독하면 할수록 조심이 더 서지요
남춘천교당 설립부터 초대교도 회장을 맡고 있는 김회장은 4시20분에 기상 교당에 가서 좌선과 기도를 하고 아침산책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는 일이 없다.   그리고 낮에는 교당의 여러 잡무들을 손수 처리하여 교무의 보좌역할을 다 하는 재가교역자다.
링컨은 40이 되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장의 얼굴을 보면 어떤 흉악한 마음을 먹은 사람도 곧 녹아 버릴 것이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선의 꽃이 피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십년을 선생활을 놓지 않고 이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특히 정신수양을 강조하면서 선을 높이 치고 있다.
가족교화는 부인(윤청정화  주무)에게 특별히 권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김회장의 행동에 감화되어 3년 후 입교했으며 자녀는 1남3녀로 모두 교도가 되었으나 사업관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것이 조금 섭섭하다고 말했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알고 보면 쉬운데 그렇게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부끄러워요.   요즈음은 옛 경전을 보면 성현들은 다 알고 계셨구나 하는 찬사뿐이예요.   이제야 공부하는 새 맛을 알아 기쁜생활입니다.고 공부의 표준을 담담히 말하면서 원불교의 장래를 생각하면 어려서부터 원불교로 교육을 시켜야겠어요.   특히 유치원 교육, 청소년 교육에 힘써야겠어요.   이들이 자라면 원불교의 주인이 되고 또 성장하여서는 원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거든요.   지금 우리 교단은 성인교화에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어린이  청소년 교화에 힘을 써 성장하는 교화로 발전했으면 합니다고 교화에 대한 일견을 말한다.
교당과 김회장집은 3백여미터다.   새벽종소리와 함께 이들 부부는 오늘도 제일 먼저 교당에 도착 좌정에 든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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