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본사 명승....호랑이 앞에 토끼 격
입문과 입회

나는 처음 그분의 위엄에 눌렸는데 목소리는 퍽 장중하면서도 또 그렇게 자비로울 수가 없었다.
귀부인들이 나늘 찾아온 데는 필시 무언가 원하는 바가 있을 듯 한데 어디 말씀들 해보시오 우리는 네 사람이나 되는데도 어쩐지 선뜻 입을 열지 못하였다.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 보시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을 물어야 하오.   나는 염주 깎는 법을 잘 알고 있는데 구두 만드는 법을 묻는다면 부인들과 나는 사제지간이 될 수 없오  할머니도 어머니도 이모도 아직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나를 찾아 왔는지 먼저 노인부터 말씀해 보시지요
그제서야 할머니는 좀 상기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예,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정 살림에 대해서도 원되는 일도 별로 없고요, 지금까지 한평생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왔으니까요.  할머니는 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부처님 말씀에 지금 이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현생은 지금 살아가고 있으니 알 것 같습니다만 전생 내생은 어떠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웃으며 할머니를 칭찬하였다.
정말 놀라운 질문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이나 할 사람이 어찌 이처럼 크고 중대한 삼세 일을 알고 싶어 한단 말이오.   남자들도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삼세 일을 알고 싶어하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오.  삼세 일이라면 내가 잘 알고 있으니 그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오.   내가 잘 가르쳐 드리리다.
다음에는 어머니도 용기를 얻어 물었다.   어머니는 포교당에서도 성리문답에 퍽 밝은 수좌였다.
저는 일찍부터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경을 보았습니다.   미륵하생경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정법  상법  계법의 삼천년이 지나면 용화회상에 미륵존불이 출세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사도가 분분해서 사도와 정도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도와 사도를 확실히 알고 싶습니다.
허어, 이거 갈수록 놀라운 말을 합니다 그려.   사도와 정도에 대해서도 내가 가르쳐 드리리다.   이번엔 큰이모가 말하였다.
저는 삼세에 관한 일과 사도와 정도를 다 알고 싶습니다.
허, 젊은 사람이 가장 욕심이 많소 그려.   그런 욕심은 많을 수록 좋은거요.   내 그대에게는 두 가지를 다 가르쳐 주겠오.     그분은 퍽 기분이 좋으신가 보았다.
오늘 내가 여러분을 만난 것은 반갑기 이를 데 없는 일이오.   부모형제가 서로 기약없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고 즐겁기 한이 없오이다.
우리들도 이상하게 감격에 젖어 있었다.
나는 평소 사람들을 많이 응대하기 때문에 상기가 잘되오.   오늘 그대들과 이야기를 하니 오히려 하기가 되니 심신이 상쾌합니다.   이제부터 나와 그대들에게 새 역사가 시작되고 새 인생이 열리리다.
그분은 앞으로 더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 법명을 지어 주겠다며 속명을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대각사 포교당 백용성 스님의 제자로 민대각화, 이원각화라는 불명까지 있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사실을 다 이야기하고 법명 받기를 사양하며 큰이모에게 법명을 내려주시라고 부탁을 올렸다.   그래서 그분은 큰이모에게 공주라는 법명을 내렸고 모든 사람이 함께 보는 구슬이 되어 세계를 위해 큰일해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법문까지 내려주었다.   큰이모는 퍽 감격을 하였다.   나는 계속 어른들 옆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분은 내게 물었다.
큰애기는 지금 여학교를 다닌다지.   요즘 세상에 여자가 학교를 다니기는 매우 어려운데 무척 복도 많이 지었나 보군.   한창 꿈이 많은 나인데 무슨 소원이 있는고   그래서 나는 한가지 원이 있다고 말하고 대답하였다.
저는 여자로 태어나서 얼굴에 상처를 입고 보니까 마음에도 상처가 생겼습니다.   기왕에 얼굴에 상처는 가졌지만 법을 배워서 나처럼 상처 있는 사람을 위하며 설교로써 녹여주고 싶은데 저도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하구말구.   공부를 하면 설교를 할 수 있지.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상처가 있다.   남편에게 소박맞는 사람도 있고,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고, 재산이 있다가 없어진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설교를 하여 마음을 열고 그 상처를 낫게 하는 의술을 내가 가르쳐 주마.
큰이모를 제외하고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쩐지 서운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큰이모에게 말하였다.  
그분이 너하고는 인연이 깊나보다.   전라도 사람은 믿기 어려운 줄 알았는데 그분은 보통분이 아니고 매우 훌륭해 보이더라.   눈에 광채가 나고, 얼굴이 훤하고, 자비스럽고, 해학도 많고 너에게 좋은 선생이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분을 무어라 부르기가 마땅찮아 막연히 그분이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분과 인연을 걸지 못한 것이 서운하였다.   하나 우리는 자타가 다 알아주는 용성스님 제자가 아닌가.
정말 우리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절에서 지키는 것은 한 가지라도 범하지 않고 지켰다.  평소에도 육류라곤 입에 대지도 않았고 한 달에도 열흘씩 꼭 십재일을 엄수하였고 육경신이라고 밤에 잠을 안자고 정진공부를 하였다.   또 해마다 정월 오월 구월이면 초하루와 보름에는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않는 일종을 행하였다.
이때까지 우리는 용성스님 한 분만 견성한 큰 스님인 줄 알고 지녔는데 전라도 생불님을 뵙고부터는 자꾸 비교해서 보게 되었다.   인물로치면야 용성스님은 얼굴이 검고 몸채가 적은 편이라 그분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1년에 한차례 각황사(현 조계사)에서 전국 30본사 주지회의가 있는데 전 불교에서 이름있는 큰스님은 다 모이건만 어디 그분과 비교될 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그 분 앞에 서면 호랑이 앞에 토끼 같고 쪼그매 보여 하는 짓도 다 우습게 보이고 그랬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큰이모의 인도로 이듬해(원기10년) 2월6일(음력 정월 열사흗날) 정식으로 그분의 제자가 되어 민자연화, 이성각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나는 그해 가을 11월9일(음력 시월 열사흗날) 어머니의 인도로 영신이라는 법명을 받고 불법연구회에 입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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