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자기 중심적이기 쉬운 것이 사람이다.   자기의 과실은 여러 가지의 이유를 내세워 변호하려 들지만 남의 과실은 이유를 불문하고 비난한다.   자기에게 닥친 곤경은 참을 수 없다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불행은 구경거리로 삼으려 한다.
이러한 심사는 어찌보면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일지는 모르나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소이일까?  물론 사람이 산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잘 살리는데 있다.  그러나 남의 과실은 탓하면서 자기의 잘못은 보호하려는 것은 결코 잘 사는 길이 못된다.   남의 역경은 오불관언으로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자기에게 닥친 난관은 참지 못한다면 이 역시 잘사는 길은 아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요원한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항상 여기 잇다.   자기 생활태도가 곧 행복의 길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여기 있으면서도 엄격한 것이다.   자기 중심을 버리고 진리의 표준으로 자기가 엄격하게 살아야만 비로소 행복 할 수 있다.
남의 과오는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과오는 용서해서는 안된다.   자기 고난은 참아야 하고 남의 고난은 돌봐줘야  한다(채근담에서)
남이 존경하거나 또는 처세상 여러 가지로 편리한 일종의 우상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실생활에서 어떤 커다란 힘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우상을 가진 사람을 행운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운은 행복에 이르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행운은 반드시 행복에 이르는 길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행운에 의뢰한들 참된 행복을 얻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남이 만들어 주는 생활이 자기의 참 인생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어떤 가문이나 환경이나 습관에 의뢰하는 것은 자기 본연의 자기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될 뿐 아니라 참다운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요 동시에 행운에만 의뢰하는 것도 자체의 타고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자기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겠는가.
누구나 인생의 바른 길을 가려면 먼저 모든 우상을 서슴없이 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문 환경 습관 등 속에서 얻은 독단이나 편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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