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자기는 자기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코 남과 별 다른 것이 없다.   자기라는 존재를 내세울 만큼 뚜렷하게 사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별다른 생활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만이 없으면 그뿐이겠지만 조금이라도 자기의식을 갖는 사람이라면 그런 저런 일상에 대하여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불만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하는 안이한 생활을 나도 그와같이 반복해야 하는 까닭에 자기가 타고난 바탕을 그대로 활성화 하지 못하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   타고난 바탕 그대로라 하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의 태도가 아니고 자기 본연의 존재 방식에 의거한 자기를 말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자기는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하게 되고, 또한 이러한 자기는 외부로부터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당당한 자기의 주인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나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도 즐거운 일이 못된다.   또 하등의 근거없이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 개의 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분노할 만한 꺼리도 못된다.   그러나 만약에 누가 나를 칭찬한 것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야말로 나의 친구로 알고 나의 장처를 더욱 살려야 한다.   또 자기의 행동이나 업적을 누가 제대로 비판하여 그것이 만약 이치에 옳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야말로 우연히 나타난 자기의 스승이라 할 수 있으니 마땅히 그 훈계를 좇아야 할 일이다.
정당한 비판에 대하여 역정을 낸다면 결코 자기의 결점이나 단점도 개선할 도리가 없겠고 터무니 없는 칭찬에 우쭐댄다면 이는 향상이 아니라 도리어 타락의 함정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자기 하는 일이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자기로서는 어떤 포부나 신념이 있어서 하는 것은 물론이겠다.   그러므로 남의 의견과 대립하거나 저항을 받더라도 거기에서 조금도 중지하거나 타협할 필요는 없다.   그런 장애물쯤은 이미 일을 하기전에 예상해야 한다.   장애물을 두려워 할 바에는 애당초 그 일에 손을 대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문제는 동기다.   자기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으로 옳은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편리하도록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남의 판단을 빌리지 않고 다만 자기 주관대로 판단 하는 것도 과오를 범할 위험이 있다.   다만 사리를 도모하지 아니하고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고 타당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그 동기는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결백하다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