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서리 종교

막스 뮬러(1823~1900)가 종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만큼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말한 것처럼 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종교에 대한 반대 사상도 높게 일어났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느니 또는 신화시대의 잔재라느니 하는 표현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 반대론도 따지고 보면 종교 자체보다는 종교의 본질에서 이탈한 제도적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보여진다.  
특히 물질적 가치에 의한 인간 소외현상이 심화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종교에 대한 회의적 태도는 종교자체에 의해 더욱 조장되고 있는 감을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종교들이 물량적 세속적 가치에 동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문공부가 발표한 종교인구는 전 인구의 77.7%에 달하는 2천9백77만2천5백52명이었다.   열사람이 모이면 7~8인이 신앙인이라는 의미이다.
정말 열사람이 모였을 때 7~8인이 종교인임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을까.   문공부가 발표한 종교 인구는 각 종교단에서 제출한 자료를 집계한 것이라고 한다.
사랑과 자비, 은혜와 용서를 실천 덕목으로 하는 종교인들이 전 국민의 4분의3 이상인데도 사회적 비리와 범죄가 더욱 증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4분의1도 안되는 비종교인들 때문일까.
고대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도 호롱불을 켜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드물다는 당시의 사회를 그는 그렇게 풍자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호롱불은 오늘의 우리사회, 특히 종교사회에 더욱 필요할 것 같다.   종교인은 증가해도 종교의 역할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종교인다운 종교인이 드물다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교조의 가르침대로 그리고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서 생활을 영위할 때에 종교인 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종교의 본질적 이념과는 멀리 어떤 제도적 장치에 의해서만이 신도가 됐다면 진정한 종교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 교단의 신자수효를 하나 증가시키는데 그리고 그 교단에 경제적 기여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종교인으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요인으로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은 더욱 큰 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 종교는 한낱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액서서리화 한다는 것은 종교를 지위와 권위 등 세속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수단적 가치로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오늘의 종교는 종교의 액세서리화를 극복할 때에 인류 역사의 진정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대들이 나의 법을 붓으로 쓰고 입으로 말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도 중한 일이나,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만고 후세에 이 법통이 길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더욱 중한 일이니, 그러하면 그 공덕을 무엇으로 가히 헤아리지 못하리라<대종경 부촉품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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