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장학회 발족
원불교 교육이념 사회적 실현 위해
가난한 인재 해외 유학까지도 지원
장학회원 유고시 상속제 적용...백학은 인화단결의 의미

거대한 출발
어느 위인은 교육의 참된 목적은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강청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는 그 자체에 기쁨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결백하게 만들뿐 아니라 그 결백함을 사랑하도록 함에 있다.   정의를 지키게 할뿐 아니라 정의에 대해서 목마르게 희구하게끔 만드는데 있다라고 갈파하였다.
인간에게 값진 삶의 자세를 제시해 주고 보다 높고 빛나는 장래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의지를 길러 주는데 있어서 교육만큼 큰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도 없다.   그러므로 교육은 이 시대에 삶을 둔 우리 모두의 과업인 동시에 사명이기도 한 것이다.
이에 큰 뜻을 세워 교육의 밑받침이 될 장학회를 설립, 불우한 이웃의 자녀들에게 배움에 목마른 청소년들에게 한줄기 배움의 원동력이 되고자 스스로 일어선 숨은 일꾼이 있다.
상주교당 창립요인이며 현재 고문인 홍정관(67)씨는 2년동안의 치밀한 계획아래 백학장학회를 창설, 지난 6월28일 창립총회를 열고 회장의 중책을 맡고 거대한 첫 출발을 하였다.   백명의 회원으로 조직된 이 장학회는 교도와 비교도를 망라하여 상주군민으로서 상주사회에 기여할 것을 목표로 결성하였다.
교리의 이념 사회에 실현
우리 교단의 사업 목표는 교화 교육 자선의 세 가지 방향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원기 3년 10월 대종사님께서 새 회상 창립한도를 발표하셨는데 제1대를 36년으로 정하고 다시 3회로 나누어 제1회 12년은 교단 창립의 정신적 경제적 기초를 세우고 창립의 인연을 만나는 기간으로 제2회 12년은 교법을 제정하고 교제를 편성하는 기간으로 제3회 12년은 법을 펼 인재를 양성 훈련하는 기간으로 정해주셨습니다.
특히 인재양성을 위해 원기 11년 육영창립단을 발족시켰고, 원기 46년에는 육영재단을 발족하여 교역자 양성의 경제적 후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번 홍 선생님께서 창설하신 장학회는 교단에 국한시키지 않고 대사회적인 입장에서 창설하셨는데 특별한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제가 원불교에 입교하기는 원기 36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30년의 세월 속에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만 이렇다 할 공부나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를 위해서도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 교단에서 익히고 배운 교리의 이념을 사회에 실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할 일을 찾다가 육영사업에 뜻을 두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한 가족 지구는 한 집안 한 일터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행복의 개념도 폭이 넓어졌습니다.
개인주의 사상이 지배하던 20세기 전만 해도 자기만 잘 살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느꼈으나 지금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여야 진실한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상 변천은 필연적으로 전 인류에게 사회 참여로써 공익사업 추진이 요청되고 있으며 앞을 다투어 참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곳 상주 현실로 보아 뜻은 있어도 재력 부족으로 사회 참여를 주저하고 있는 인사가 많음을 알고 단독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뜻을 같이한 사람끼리 단합하면 항구적인 공익사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끝에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회를 조직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곧 나의 존재 근거가 되는 사은에 보은하는 실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회원은 상속제로
전북 임실이 고향이시고 주로 사법계에서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끼쳐 주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경상도인 상주에서 이 사업을 뿌리내리게 되셨으며, 장학회 명칭 또한 백학이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경상도와 전라도는 어쩐리인지 상당한 배타적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신라와 백제라는 삼국시대의 지역적 감정이 잔존해 있어 그러는게 아니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제 생애를 마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령장을 받고 상주에 온지도 어언 26년이 되었고 특히 이곳 주민들에게 평가되는 전라도인의 이미지를 씻고 무엇인가 도움이 될 일을 함으로써 서로의 오해와 반목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저의 소망의 씨앗이 장학회라는 새싹으로 돋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학회 명칭인 백학의 의미는 백은 백명을 뜻하고 학은 길조이며 장수하고 단체 행동에서 이탈하지 아니하는 새이므로 백명회원이 무병 장수를 누리면서 인화단결 하자는 뜻으로 명칭을 정하였습니다
말씀해 주신바와 같이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두루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와 사회의 동량이 될 인물을 길러 내신다면 좀더 회원을 신속성 있게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1백명으로 못박으시는 뜻은 무엇인지요?
이미 취지를 말씀드렸듯이 인류의 행복도 공동체로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약 10명정도의 회원으로 발족하려던 것을 백명으로 늘였습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나 복지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아서 소수인이 다액을 출자하는 것보다는 다수인의 소액이 훨씬 영향력이 크다라고 생각되어 백명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단 한명이라도 줄어들 수도 더 늘어 날 수도 없도록 정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구히 1백명의 회원으로 존속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백학장학회 요람을 만들어 거기에 개인의 주소 성명 사진 가훈 등을 수록하며 또한 사업상황도 상세히 기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백지 한 장을 끼워 거기에 회원 사망시에는 지정 상속인을 기입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인이 한 권씩 갖게 되고 사무실에 1권을 두어 영구 보존하게 되므로 회원은 항상 백명입니다.
그렇다고 상속인이 회원이 되다하여 장학의무금을 따로이 내지는 않습니다.   일단 처음 발족 당시 가입금인 1인당 30만원으로 회원의 의무금은 끝납니다.   그러므로 상속인이 몇십대를 흘러 간다해도 의무금은 없게 됩니다.   다만 특별찬조금은 본인들의 성의대로 자량에 따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요람 한 권은 장학회 족보가 되는 것이며 후손들에게 전해질 때 그것은 재산 상속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언의 가훈이 될 것이며 값진 정신적 유산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시  공을 통해 부정개입은 안돼
이 장학회원은 언제부터 모집하기 시작했으며 이 일을 하시면서 겪었던 애로사항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80년도 3월부터 뜻을 내어 5월부터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씩 단독으로 만나 취지와 운영방법을 설명하면 상당히 호응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원수가 백명이라는데 의심을 품은 경우가 있었지만 3~4회 만나 설득을 하면 곧 수긍을 하면서 가입을 하지요.   특히 현금 출납은 일체하지 않고 지정 은행에 의뢰, 시간과 공간적으로 부정이 개입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장학금 지급도 지출결의서에 의해 은행에서 지불하고 영수증으로 처리하도록 하였다는 운영방침에 굉장히 신뢰를 하면서 마음놓고 가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81년 11월 말 창립예비 총회를 기해 회원 백명이 확보되었고 회비도 납부하기로 했었는데 막상 그날이 오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2~3명은 완전히 탈퇴하였고 29명은 무기한 연기를 주장하고 나와 그걸 보충하는데 애를 먹었지요.
장학생 선발은 어떻게 하게 되며 또한 지금 금액의 한도와 기한은 정해졌는지요?  즉 장학생 선발에 따른 관리 문제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82학년 신학기부터 실시하려고 하는데 우선은 상주군내의 고등학교에 입학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군내 중학교 교장에게 공문을 띄워 추천해 주도록 할 예정이고 상주군 교육장을 당연직 고문으로 하여 회장단과 임원들의 심사로 장학생을 선발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학교 합격증과 교장추천서 그리고 무재산 증명서가 첨부되어야 하지요.
장학생의 선발 기준은 수재양성과 빈곤자를 돕는데 있으므로 아무리 수재라 해도 집안이 넉넉한 학생은 제외가 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결제적인 문제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들에게 희망을 넣어주어 미래를 창조해 나가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학금 한도는 일정하게 정하지 않고 학부모와 타협, 가정에서 부담할 수 있는 한도액 이외의 금액을 지급하며 전액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전액을 담당해 줍니다.   그리고 일단 선발된 학생에 대해서는 본인이 희망하는대로(해외유학까지라도) 학업을 마칠 때까지 힘 밀어 주려고 합니다.   따라서 배출된 장학생 명단은 기록을 통해 영구히 보존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후일 장학회 후원회가 발족된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사업을 추진 창설하시면서 느끼신 점이 많으실텐데요.
한마디로 사회학을 다시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교단의 정신인 무념보시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을 때 더욱 우리 교법의 사회화 작업이 시급함을 느꼈습니다.   명예욕과 공명심의 자극이 일을 추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이 또한 상을 떼는 공부의 표준으로 스스로를 닦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절실해 졌습니다.
앞으로 5천만의 기금이 서지면 재단법인으로 발족하려고 합니다.   설립과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처음의 뜻대로 밀고 나가려면 교단의 이념이 정신적으로 뒷받침되어져야 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국 각 교당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도불리기 등 교화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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