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요한 행사(회의)가 끝나면 으레 평가회를 한다. 평가회를 하는 것은 그 행사의 진행과정 및 결과를 놓고 잘 잘못을 밝혀 다음에 이와 유사한 행사가 있을 때 참고해 보감을 삼자는 뜻일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단은 평가회를 하게 되면 행사 주관자들에 대한 칭찬이나 형식주의로 흐르고 있는 경향이 짙어, 회의 본래의 목적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되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주의적 온정주의 때문이다. 지금, 교정 정책입안을 맡고 있는 실무자들은 거지반 동기생이거나 23년 선후배 사이이다. 그러고 보니 비판이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 교단 평가회는 정확한 진단에서 나오는 평가라기보다는 잘 했다고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결혼이 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것이 없는데도 굳이 꼬투리를 잡기 위해 비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데 있다. 이왕지사 다 지난 일을 가지고 심각하게 따져(이런 저런 인연들이 얽혀있는데) 뭐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요는 잘못된 일을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관행은 집단을 최면상태에 빠뜨려 사물의 본질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이나 집단은 경쟁력을 상실해 결국 현대 사회에 낙오자가 되고 만다.
 필자는 오늘의 교화침체 국면은 그동안 우리 교단이 작은 행사부터 큰 교단 정책문제에 이르기까지 엄정한 평가없이 적당히 넘겨 왔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지난번에 교단은 새로운 틀을 짜야한다면서 종법사 직속으로 수위단회에 원기 100년 교단 발전계획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역대 교정원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같은 주장은 백서가 나옴으로써 역대 교정원이 당시 한국 사회에 부응하는 정확한 교단 정책을 펴 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작업이 이뤄져야만 진정한 교단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따라서 평가회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총회도 평가회를 가지면 십중팔구는 잘 치러졌다고 할 것이다. 필자 역시도 예년에 비해 금년 총회는 교정원 당국에서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여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외형적 수준의 향상을 가지고 총회가 잘 치러졌다고 평가하는 데 있다. 물론 외형적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모양새는 우리가 이미 갖출 수 있었다. 금년으로 총회가 몇해째 인데언제까지 문제의 본질을 놓고 외형만 가지고 평가 할 것인가. 이렇게 외형적인 잘 잘못만 가지고 평가하다 보면 형식주의에 빠진다.
 회의는 무엇보다도 의결사항 즉, 열매가 있어야 한다. 이 열매를 갖기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을 추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열매가 없는 회의를 잘된 회의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정말 총회는 집행부의 교단 정책실행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함께 새해 교단 미래를 여는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주는 회의여야 한다. 총부는 이런 회의가 되도록 각 방면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금년은 새로운 총회 문화를 창출해 보려는 시도에도 불고, 이 점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따라서 교정원 집행부는 앞으로 총회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에는 백서를 낸다는 심경으로 자체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로가 열려야 한다. 문제가 있어도 쉬쉬하고, 알고도 말 못하는 풍토가 불식되어야 한다. 지도층에 대해 바른 말을 하고 현실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토록 전달을 해 줘야 한다. 다음 한 일화를 소개하겠다.
 링컨은 변호사가 된지 얼마되지 않아 매우 중요한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와 함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들은 대단한 관록이 있는 변호사들이었다. 링컨은 이들로부터 모욕적인 폭언을 들으면서 재판에 승리했다. 그 다음날로 링컨은 사표를 내면서 동료들에게 그 분의 눈부신 변론은 내게 엄청난 계시였다. 나는 도저히 맞수가 되지 못한다. 시골로 가 공부를 다시 하겠다
 여러 해가 지나 링컨은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에게 모욕을 주었던 변호사는 여전히 강력한 대통령 비판자였다. 그래도 링컨은 국방장관 자리가 비었을 때 주저 없이 그를 후임에 임명했다. 그만큼 유능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장관이 된 다음에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이 암살되었을 때 둘도 없는 위인을 잃었다고 서러워한 것은 바로 그였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