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봉공회장으로 봉공의 대열에 앞장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내생길 준비다짐

봉공의 일터에서
 어느 날 부산 서부교구 봉공회장으로 임명됐다. 공인으로서 활동할 만큼 정신적 여유를 얻지 못하여 극구 사양했으나 교도들의 신뢰로 임명이 된 것이다. 나는 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과 함께 영광으로 알고 봉공회장직을 수락했다.
 이때부터 나는 공인으로 솔선수범하는 회장, 뭔가 이뤄놓을 수 있는 회장이 되리라고 다짐하고 시야를 사회로 돌렸다. 사회의 타봉사활동을 보니 원불교 봉사활동은 그 활동으 폭이 좁고 뒤떨어진 면이 많아 원불교의 무아봉공 정신을 봉공회를 통해 세상에 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소신이 섰다.
 그때부터 조직에 나서 당시 박은국 교구장님의 승인 아래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적십자사에 등록하였다. 대외적으로 적십자사 원불교봉사회, 대내적으로는 교구 자원봉공대라는 명칭으로 각 교당 유지 법동지들이 모여 지금까지 혁혁한 활동으로 원불교를 알리는 간접교화에 나서고 있다.
 나는 입교 5년만에 부산시 적십자협의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지금은 전국을 관할하는 중앙협의회 부의장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을 나 개인의 명예와 영광이 아닌 원불교 봉공회의 명예요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울러 영생을 통하여 일원상의 깃발이 적십자사의 깃발 못지 않게 국한을 벗어나 세계에 휘날려 평화, 자비, 은혜의 상징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또 보람된 일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한 맺힌 여성들을 위한 한글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교구에서 마련한 배움터 예지원의 첫 교사로 뛰어들어 7년간 하루같이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교육열정을 온통 쏟았던 기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기억이다. 후일 교구 교무님들과 교당 교도님들의 열의로 탄탄한 교육기관으로 성장된 예지원을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다. 더구나 예지원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교도로 인연 맺게 된 제자들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그 당시 염원하였던 일 중의 하나는 독경반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교구자원봉공대원 일동과 합심하여 독경반을 구성하니 대내적 상장의식 뿐 아니라 대외적 상장의식에도 참여하여 교화의 일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분서주하는 동안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부산 서부와 동부가 통합이 됐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시 봉공회장을 맡게 됐다. 나는 너무나 오래 중책을 맡게 되어 너무 오랫동안 이 일을 맡는 것은 아닐까. 이래도 되는 걸까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있듯이 이루어야 할 일, 해야할 일들은 무한하지만 이제는 70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내상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의 도산으로부터 15년째 되는 지금, 주마등같이 스쳐 가는 갖가지 사연들로 점철된 15년간을 돌아보며 이제는 안도의 긴 숨 쉬어본다. 지난 40년동안 서면교당은 나의 보금자리요 생명줄이었다. 하루라도 그 줄을 놓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째 되었을까? 역경과 시련이 나를 공부시켰으며 나를 존재케 한 것이다.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하여 원불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고 아끼는 마음을 재점검,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호사다마라는 말 잊지 않으며 평상심을 갖추기에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어떠한 폭풍우가 불어 닥쳐도 괘념치 않을 것이며 마음은 언제나 풍부한 부자로서 속 깊은 공부길로 들어가 내일 일은 법신불 사은님께 맡기고 오늘에 안분하는 삶을 살리라.
 앞으로 사은님 은혜속에서 보은하는 정신으로 살아가기를 약속드리며 변변치 못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 드립니다.  <교도서면교당>
안경일 교도의 신앙수기 생의 황혼에서는 이번 호로 끝납니다. 그 동안 원고를 보내주신 안경일 교도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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