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의 만남

군 제대 후 내가 처음 시작한 일은 농사였다. 농사일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 당시 정부에서 장려하던 통일벼를 처음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던 일을 처음 시작하며 나는 단단한 결심으로 임하였다.
 대전시 대덕구 장동은 나의 고향마을이다. 나는 여기서 50여년을 살아왔다. 이곳은 1960년도 미군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암흑 같은 골짜기였으며 마음 사람들의 대부분은 좁은 땅덩어리에 식구 모두가 의지하여 사는 빈농으로 이루어졌었다. 나의 집 역시 마찬가지여서 나의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우리 집은 물론 마음 사람들에게도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실패하면 부모님을 비롯해서 열한 식구가 굶어야 한다
 굳은 결심아래 나는 원래 두 가마를 수확할 수 있었던 논에서 여섯 가마를 수확할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하루하루 정성을 들여 벼를 가꾸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였다.
 그 날 우리 모두는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나는 벼 재배에 성공해 목표에 반 가마가 못 미치는 다섯 가마 반을 수확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정부에서 시상하는 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듬해에는 재배에 성공한 나를 보고 통일벼를 재배한 일곱 가구가 상을 타게 되었고 3년 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재배를 시작하여 이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기니를 걱정하지 않고 넉넉하게 살 수 있었다. 이때부터 농촌지도자로서의 나의 삶은 시작되었으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 뒤에는 웬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왜일까.
 이때부터 나는 종교를 찾게 되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교회나 절은 물론 온갖 사이비 종교가 모여 있던 곳이었다. 내가 종교를 찾아 교회나 절에 다니기 시작하자 부모님들은 혹시나 그런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을까 하여 노심초사 하셨다.
 내가 원불교를 알게 된 것은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였다. 마침 당시 대전교당 박성식 교도가 시내 한 레스토랑에서 그 주인을 교화하기 위해 육도사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 것이 계기였다.
 지옥과 극락,지옥과 천당이라는 말보다 육도사생에 대한 박 교도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쉽게 이해되고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나에게는 입교를 권하지 않고 시간 있으면 한 번 찾아가 보라는 말만을 남긴 채 그날의  만남은 끝났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혼자서 대전교당을 찾아갔다. 법당에서는 균타원 신재근 교무님께서 교리도에 대해 설명하고 계셨다. 간결하고 명확한 설명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원불교야말로 나의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몰래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교전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원불교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고 일요일 법회시간 설교를 들을때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의 집은 떡이 끊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특별한 종교가 없었으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산 우물가 부엌 등 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고사를 지내곤 하셨기 때문이다.
<교도대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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