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하고 생동감 있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교단적인 과제로 떠오른 게 교화 활성화이다. 기회만 있으면 히보자는 말들을 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귀를 쫑긋 세워 경험에 체험을 더한 교화기법이나 정성스러움을 배워 더 큰 보람을 일궈내는 선진님, 후진님, 동지님들을 보며, 본인의 생활을 뒤돌아 본 일도 많이 있다.
 좌산종법사님께서는 청소년의 됨됨이를 보고서 그 국가 사회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법문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정서가 교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면 무리일까?  교화활성화나 신명나는 교화 방안이 수없이 많겠지만, 우선은 교무님들 각자의 마음이 싱싱해야 할 것 같다. 역량을 키워주는 공부풍토를 조성하면서, 조금 모자라고 생각하는 바가 다를 지라도 감싸 이끄는 선후진의 윤리를 세워보자. 재미나게 교화하자, 그러기 위해 권위 지향적인 분위기를 쇄신하자. 권위는 한 자리를 뜻하는 감투의식에서 비롯된다.
 대종사님 당대에는 모두 함께 낙도를 수용하는 공부풍토의 지향으로, 교단의 구성원들이 거듭나는 감사생활을 하였다고 배웠다. 자연히 모든 생활영역에서 비롯되는 사명감과 당당함으로 교화의 신장은 물론 교단위상의 확립이 가능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상하 서열의식의 집착에서 벗어나자. 조직의 구성상 상하가 없을 수는 없지만 사무적으로 질서의식을 강조하고 적응하는 조직은 비전을 찾기가 어렵다. 실력에 맞게 일을 맡기고 위  아래의 교무님들이 서로 서로 경애의 태도를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친척 구분의식을 극복하자. 한국인은 누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성과 이름과 나이를 묻고 살핀 다음. 어디가 고향이며 학벌은 어떠한가? 확인해 보고 자기와는 어떠한 정도로 친해질 수 있는가? 가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친소를 가리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삶의 현상이라 하더라고, 교화의 원리는 아니다. 교당 안의 특이한 친소 구별의식을 극복하면서 서로에게 진정으로 기쁨을 주는 본연의 관계로 바뀔 때 교역자 개개인의 마음이 살아나고, 조직의 생동감으로 법풍이 진작되고 낙원건설의 비전을 제시하는 회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교단적 관심과 모든 교무님들의 굳은 의지가 교화활성화로 가시화되고 있는 듯 하다. 당당하게 공부하며, 재미나게 교화하자.
<중앙교구 사무국> 탁명철 교무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