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ㆍ호칭 통일된 삼위일체 신앙

우선 신앙 대상의 호칭을 원불교 신문 3월 22일자에 교무가 제기한 신앙의 대상 호칭에 관한 한 의견의 글을 잘 읽었다. 우선 신앙 대상의 호칭을 교단적 중지를 모아 개선했으면 하는데 절대적으로 찬성한다니 반가운 마음이다. 그러나 박교무가 제시하는 견해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박교무는 신앙 대상의 호칭문제를 제기함에 있어서 신앙인의 신앙적 정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앙은 정서의 문제이지 지식이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을 먹고 사는 종교적 동물이다. 동서를 불문하고 인간은 생명의 위기를 당했을 때에 그 어떤 절대자에게 의존해서 그 위기를 벗어 나려고 한다.
 서양 속담에도 There is no atheist in the foxhole(전선의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는 아무도 없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특정한 종교 신앙 유무와 관계없이, 동서남북 어디에서 살든지 인간이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종교적 소양을 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의존감정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부모와 자녀 사이, 부부나 형제 사이, 친우 사이등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소중한 의존감정이다. 이 감정은 시간이 변하고 공간이 변함에 따라 변하는 의존감정으로써 이것을 상대적 의존감정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의존감정이 있다. 이중에 절대 의존감정이 신앙의 영역이다. 특정 종교 신앙과 관계없이 인간이면 누구나 생명의 위기를 당했을 때에는 절대 의존감정에 의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종교에서 신앙 대상의 호칭을 생각할 때에는 이같은 인간의 종교적 소양을 긍정하고, 교리의 기본정신을 함께 수용하는 방향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본인이 신앙 대상의 호칭을 님 부처님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점을 전제로 한다. 결코 일시적 교화의 부흥을 위함만이거나 관념적 등상불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둘째, 호칭의 선후천적 구분의 문제이다. 박교무는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6장을 근거로 법신불은 선천시대의 추상적 명호이고 일원상은 후천개벽시대를 맞이하여 사실 그대로 진리 당체를 사진처럼 묘사한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리편 6장의 말씀은 신앙 대상의 호칭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 신앙대상 즉 본존에 관한 내용이며, 호칭을 선후천으로 나누는 관점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일원상이나 법신불이라는 표현은 선천시대에도 사용되어 왔으며, 후천시대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정전 교리도와 서원문 등에서는 일원은 법신불이라하여 선후천과 관계가 없이 엄연한 교리로 쓰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불교의 교명은 먼저 원불교는 원()을 불(-깨닫는)하는 종교요, 다음은 원불()을 신앙하는 종교이며, 또 하나는 원()한 불교 즉 원만한 불교요 원만한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라는 것이다(범범록 300항).
 원불교가 원()의 진리를 불(-깨닫는) 의미와 함께 원불()은 둘 아닌 진리임은 사실이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법신불이라는 표현에서 법신은 진리의 본질이요, 불은 진리에 대한 위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불()이라 할 때에 원()은 진리의 본질을 의미하고 불()은 그 진리의 위격을 표현하고 있다.
 셋째, 님 부처님 호칭의 유래와 필요성 문제이다.
 원불()의 유래는 종사님께서 교명 제정시 처음 사용하셨고(정산종사법어 경륜편 1장), 상사님께서는 원기 61년과 79년 신년법문으로 원불님이라 하셨으며, 종사님은 원불님이 좋다 하시면서 영어로는 won<&25141>buddha라 함이 좋겠다고 하셨으며, 종사님도 사은의 근원이신 법신불이라고 생각해 보셨으나 원불님이 좋겠다 하셨고, 종사님은 에서 원불교는 원불을 믿는 종교이다라고 하신데서 유래 되었다.
 모든 종교는 그 종교의 교명과 신앙의 대상인 본존()과 호칭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우리의 교명은 이고 법당에 모셔진 본존은 원불()이요 호칭이 원불()님일 때에 비로소 삼위일체의 신앙이 된다. 우리들의 님에 대한 믿음은 호칭으로 표현되고 호칭은 우리 행동의 씨가 되며 행동은 우리의 습관을 형성하고 습관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세계적인 설교학자 루돌프 보렌은 신앙대상에 대한 인간의 언어가 가지는 최대의 형식은 이름이요 호칭이다고 단언하면서 설교는 하나님의 호칭을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가능한한 그 내용은 심오하고 다양한 의미를 함축함이 좋다. 그러나 호칭은 누구나 부르기 쉽고 친근하며 간결해야 한다.
 이와함께 부처님의 호칭도 필요하다고 본다. 부처님이라는 호칭은 2천여년 동안 인류정신사에서 호칭되어 오면서 검증이 끝난 brand이며 trademark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은 천하의 큰 도라, 내 법의 연원은 서가모니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었다. 다만 원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서가모니 부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가모니 부처님이 나시기 전부터 소태산 대종사님이 나시기 전부터 존재해 왔던 우주적 진리로서 석존이 깨닫고, 소태산 대종사님이 깨달으신 그 진리를 말한다.
 기독교가 한국에 와서 4천년 동안 한민족의 brand이며 trademark였던 하느님을 적극 사용함으로써 한민족의 정신적 토양에 토착화하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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