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는 새 시대 새 회상이 열린 거룩한 성지로서 후천개벽시대의 주세성자로 이 땅에 오셨던 소태산 대종사께서 20여년의 구도끝에 대각을 이루신 후 억조창생의 이 될 원불교를 열으시고 후천개벽시대가 시작되는 갑자년(원기 9년)에 첫 교화의 장을 펴신 성스러운 이다.
 이처럼 새 시대의 주세성자께서 선택하신 성스러운 터전이요, 인류정신문명의 구심점이 될 이곳 익산성지를 지극한 신심과 공경심으로 길이 보존하고 가꾸며 만대의 숭모지가 될 수 있도록 장엄불사를 행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의무가 아닐 수 없다.
 이 거룩한 도량에서 을 울려왔던 원래의 범종은 부산 초량교당 김정윤 교도가 이모( 오공순님)의 열반기념으로 교당에 희사한 것을 공타원 조전권 종사가 원기 32년 2월에 철도편으로 총부에 보내왔으나 당시 총부에 종각이 없어 종을 세탁부 옆에 장나무 다리를 세워 매달아 사용해 왔다. 종각은 원기 39년 김정윤 교도의 희사로 이리 중앙초등학교 옆에 있던 사찰(동본원사에 소속된 절)의 종각을 이전 건립하였으며, 세탁부 옆의 종을 종각으로 옮겨 사용하던 중 종이 깨져 사용이 어렵게 되어 반백년 기념관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의 범종은 원기 66년 5월 남원교당이 금암봉에서 시내로 이사하면서 교당의 범종을 총부로 옮겨와 사용되어 왔다. (  종사 고증)
 그동안 사용했던 종각은 노후되고, 종은 왜소하여 중앙총부에 걸맞은 양식의 종각과 종이 새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대중의 바램이 있던 중 중앙교구 금강교당 교도회장  ,   주무 내외의 원력(1억3천7백여만원 희사)으로 불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종각의 위치와 종명(개벽대종), 종각명(원음각)은 종법사가 명명하고 공의를 거쳐 정하였다.

 1. 개벽대종
 1) 개벽대종은 중량 1천10관(3천7백87.5) 높이 182(용두제외) 직경 140의 크기로 주조되었다.
 2) 개벽대종은 에서 주조하였고 비용은 5천만원이 소요되었다.
 3) 개벽대종의 형태는 한국 전통적인 종형(삼국시대 신라 범종으로 김치독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을 기준하여 주조하였다.
 4) 개벽대종의 문양은 고려 을 택하였고 유두 부분은 의 방위표를 넣었으며, 전후면에는 종명을 새기고 좌우면에는 교리도와 개교표어를 새겨 본교의 주체성을 살렸다. 글씨는   교무의 필체이다.
 2. 원음각
 1) 원음각은 이곳 익산시 신룡동 산 10-12번지(810평)에 단 건평 6.25평으로 건립하였다.
 2) 건물목공분야는 전남 영광읍 거주 목수에게 의뢰, 원기 80년 11월27일 착공하여 81년 3월29일에 준공하였고, 목재는 건축용 상급으로 붉은색 계통의 강하고 질긴  다그라스를 택했으며 공사비용은 6천4백만원이 소요되었다.
 3) 건물의 석공분야는 황등면 한승석재  사장에게 의뢰,(81년 4월1~ 17일) 완성하였으며, 석재는 질이 좋은 황등산 화강석(발이 고운 백색 계통의 돌)을 택하였고 공사비는 1천9백만원이 소요되었다.
 4) 건물의 지붕 기와는 수명이 오래가는 경남 함양군 소재 이화요업 생산품인 한식형 밤색기와(청기와 재질에 진밤색 유약처리)를 택했다.
 5) 건물상량은   교무가 쓰고 천정 방위도는   교무가 썼으며, 현판의 글씨는   교도의 필체이고  교도가 조각했다.
 6) 도색은 관촌 원광식품의 생들깨 기름을 사용했다.
 앞으로 이 개벽대종을 통해 울려 퍼지는 원음이 이 곳 익산 성지를 찾는 모든 이들의 본래 성품을 일깨워 주고, 거듭남의 메아리가 되어 대종사님의 대법륜을 함차게 굴려 가는 전법주인공들이 되게 하시와, 일체 중생들이 숙겁의 무명업장을 벗어버리고 죄악과 고통에서 벗어나 온 세상에 깨달음과 법열이 충만하여 맑고 밝고 훈훈한 불국토가 이루어지도록 너른 세상 건지는 원음이 될 것을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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