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의 메시지
민중과 개벽
유기현 교무<수위단원ㆍ원광대 대학원장>
새 시대와 제3세계 선두주자
민중의 정체성과 그 좌표 정립
변화에 대한 가장 적극적 자세
우주적 질서를 인간적 질서로

민중화의 물결
 세계 2차 대전의 종말을 고하던 1945년을 기점으로 구라파에서는 그동안 「자유지성인들」이 국가권력이나 「이데올로기」애 이용당했음을 자각하고 세계 定位性을 회복해야 한다는 자율화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조짐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중이 선각자들이 일찍이 부르짖은 개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본다. 이 자율화의 물결은 대학을 통해서 거세게 일어났다. 이렇게 일어난 구라파 선진국들(독일, 프랑스, 영국)의 자율화는 철학적 사조와 과학적 사조의 조화라는 요청과 함께 우주시대를 열게 되고 10년 후 이 열기는 미국의 대학으로 유입되었다. 이 운동은 「영 걸쳐」「우먼파워」라는 구호를 일으키면서 미국의 대학 양상을 바꿔 놓았다. University System에서 Multiversity system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 파동은 또 다시 약 10년 후에 동양 쪽으로 건너와 일본이 대학생들의 자율화 운동으로 파급되었다. 일본의 자율화 물결은 赤軍派의의 Anarchism 운동이 가미되면서 민주화의 길을 다소 열게 되었다. 마침내 그 여세는 15년 뒤에 한국에서일게 되었고, 한결같이 그 파동의 핵심체는 대학생들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음은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이 땅의 역사, 그리고 한국 이 땅의 젊은 지성들은 세계선진국 대열의 후미에 서 있으며, 동시에 제3세계라는 후진국 대열에서는 선두주자임에 틀임 없다. 이는 우리 선각자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선천 개벽시대의 종말」인 동시에 「후천 개벽 시대의 시초」에 서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 묘한 땅이다. 그 인구나 국토면적으로 보아서 양적 체 모로는 매우 왜소하지만 거기에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를 상징하는 38선을 만들고 세계의 초점을 모으게 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세는 한국인의 비극일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류역사의 일대전환을 초래할 조짐이 바로 이 땅에서 일고 있다고 희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역사의 좌표는 한국을 초점으로 서서히 변화해 온 것이 아닐까.
 한국은 「선천개벽시대」의 후미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후천 개벽」이 열리는 시대의 선두에서 세계 역사의 변화를 시도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한국 이 땅에서 현대 이후에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체제를 세우고 하루빨리 이에 근거하여 인물을 기르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훈련의 풍토만이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본다. 한국은 확실히 개벽을 꾀하는 일군들이 나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지금까지 반세기의 과정에서 아직도 아무런 판결을 보지 못한 채 용트림하고 만 있다. 세계 사조가 이 땅에 38선을 긋게 하고 금후 인류의 십자가를 다 짊어지게 한 듯한 현상은 우연한 변화인 것 같지는 않다. 정녕 하늘이 맡겨준 어떤 사명을 수행하도록 기다려온 땅인지도 모른다. 이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 잠시 「한국 민중종교」의 교조들이 창조해 낸 언어를 빌어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선진국 대열의 후미」란 「선천시대의 말」이라는 표현이며, 「후진국 대열의 선두」란 「후천 도래의 시작」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선 후천 교역」의 세계사적 변동 태가 왜 하필 이 땅에서 전개되는 것일까.
 한국인이 이 땅에 살면서 순수하게 가꾸어온 자랑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혼이다. 결코 고루하거나 고집이 아닌 보편적 인간 혼을 길러왔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없는 질박한 사람들일수록 가장 인간다우며, 모든 생존의 조건들을 하나도 버림 없이 고마웁게 받아들였다. 이과같이 인간 혼을 형성해 왔기에 한국인들은 마냥 순수하면서도 끈질긴 것인지 모른다.

개벽은 어디에서
  오늘날 한국 민중운동이 양상은 크게 세 가지 각도에서 일고 있다. 하나는 일제시대부터 민족의식을 가지고 구국운동에 나섰던 청년학생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일으키고 있는 민중운동이 그것이며, 이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효시로 요즘 대학가에서 활발하게 일고있는 양상들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제 시대부터 민족주의자들의 구국운동중의 하나로 받아들인 공산주의 혁명 노선이다. 해방 후에는 잠재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노동자 농민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도시빈민층, 저임금 근로자들을 자극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으로 이끌려는 것이 그것이며 또 다른 한 민중화의 물결은 지극히 최근에 활발해진 기독교인들의 「정치 신학적 민중화 운동」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신학을 토대로 한 「민중의 해방논리」등을 수입해온 것이 그것이다.
 이들 세계의 민중론 중에서 첫 번째를 제외한 두개의 특징은 모두 그 본바탕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으로써 한국인의 뿌리깊은 심저에서 외치고 나온 소리와는 구별된다. 아직도 한국적 민중론으로 확립되기에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기에 오늘날 정치성을 띠고 요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민중운동은 그 희생의 대가가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치러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일으키고 있는 민중화의 물결은 한민족의 正體性을 쳐들고 전개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운동타입의 성격에 다행히 국수주의적이 아니라는 점이며 그 해방이 주목된다. 이에 대하여 한민족의 인간 혼을 되살림으로써 「민중주의」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민중종교」운동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1860년에 「최제우」가 동학을 일으킨 이래 불붙인 민중운동이 그것이다. 이 「민중종교」의 대두는 현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민중주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 운동이라고 본다. 외국에 수출시킬만한 민중의 논리와 그 운동의 좌표가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기에는 눈을 돌리지 않을까? 이와 같은 안타까움은 거기에 몇 개의 원인이 있다.
 첫째의 원인은 요즘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의 의식 속에 역사의식이 결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급격하게 시대사조가 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먼저 전통에 도전하려는 「민중사관」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그에 관한 관심은 지도층들의 형태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지도층에서는 한국의 민주화 민중화의 물결이나 민족정기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학생운동」이나 「한국의 민중종교」운동 중에서 어떻게 일고 있는지? 이를 굽어보려는 시각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둘째의 원인은 오늘 한국의 시민사회는 해방이후 특히, 6.25사변을 통해 격변했던 상황 속에서 서양의 기독교사상이 득세함으로써 근대화에 앞장서게 된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배출되었고, 그들은 「섭리사관」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대학생들의 민중화 운동의 성격이 다양하여 혼돈된 느낌이다. 또한 한국의 민족종교를 卑下시키려는 관점마저 불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뿌리 정신이 흐르고 있는 민주화 민중화의 정체는 은폐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셋째의 원인은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일으킨 동학사상이 민중종교운동을 시원으로 하고 군소 종교들이 후천 개벽 사상을 쳐들고 민중 속에서 많이 발흥하였다. 이 동학이후에 한국에서 자생된 종교들의 교조정신에는 놀라움 만한 민중사상이 제기되어 있으며 그 이념으로 민중들을 규합하면서 종교화의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가 제기되고 주장한 「민중사관」이 무엇인지? 그 후 從徒들이 이를 잡아 세우지 못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현재 활발하게 일고 있는 민중화 운동은 대학생 구국 청년들의 열기를 돌려 이 땅에 수입된 민중화 운동에 접목시키려는 속에서 매우 요란하게 일고 있다. 이는 어쩌면 대권에 도전하는 식의 정치적 표피현상일 뿐 그보다 더 기층에서 「숨쉬는 민중」다시 말하면 「잠자는 민중」- 동학이후 이른바 「후천개벽사상」을 바탕에 깔고 일어난 민중화의 물결 - 과는 접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통에 뿌리박은 학생들의 민중운동이 될는지 아니면 어떠한 경향성에서 한 시대를 요란하게 만할는지 이에 대한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서 그 규명은 접어 두기로 하고, 논제가 주어진 한에서 「민중종교」운동에 들어 있는 「민중과 개벽」에 대해 그 본질과 성격을 일별 하기로 한다. 한국의 「민중종교」가 지니고 있는 「민중적 저력」은 무엇이며, 「민중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냥 조용하며 순수하기만 하다. 정치권력에 도전한다거나 자기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식의 과격주의는 그들에게서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는 한국인의 뿌리깊은 「종교심성」을 토대로 하고 있는 한 언제나 조용하게 일을 것인가? 최제우, 최시형, 전봉준, 3.1운동으로 이어 지는 정신의 맥락은 그 역사를 더듬어보면 결코 조용하지만은 않을 성싶다. 한국사회의 보다 기층에서 아직도 「잠자는 사자」로 숨쉬고 있다고나 할까.
 수운이 동학을 일으킨 이래 후천 개벽을 부르짖으며 형성된 「민중종교」는 한국역사 오천년 동안에 벌로 그 족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민중적 자생종교이며, 한말ㆍ일제 시부터 우리사회 기층에서 창조적 의지로 역할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한국 자생종교의 민중화운동은 앞에서도 지적했거니와 아직도 상층사회에 속하는 한국의 식자들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에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

민중종교의 개벽사상
 수운이 일으킨 동학운동이후 한국의 눌려진 민중들은 한결같이 후천 개벽의 문로가 한국 이 땅에서 열리며 5만년의 대운을 타고 「인간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들 민중 속에서는 간간이 더욱 뜻이 트인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들을 통해 감화집단을 형성하며, 민중 혼을 길어온 것이다.
 한국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을 파고들어 조직화 시켜온 후천 개벽의 사상은 마침내 왕조 체제에 대응하는 민중 층을 줄기차게 형성해 온 것이다.
 이들 한국민족을 통해 이루어진 자생종교의 민중 혼은 종교화라는 감화집단의 조직으로 민중 층을 형성해 왔다고 보았거니와 후천 개벽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한국에서 「민중사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젠 탐구의 정열을 여기에 쏟아야 할 날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에 근거한 종교집단은 천도교이며, 이 개벽사상은 김일부의 정역사상으로 그리고 강증산의 「천지공사」그리고 나철의 중광 사상으로 그리고 소태산의 정신개벽으로 이어져 5대 맥을 이루었다.
 이들 민중종교의 5대 맥을 중심으로 파생되어 나가는 민중화 운동은 들 끊는 혁명이 아니다. 상생과 상보와 조화 그리고 조용하고 「무위이화」로 결속케 하는 「심법의 혁명」(용심법)이다.
 따라서 한국인이 이 땅에서 창조한 민중 혼은 「깨우친 민중 혼」이요, 자립ㆍ자존ㆍ자생ㆍ자강의 민중 혼이다.
 한국민중들은 어려운 고비에 처해 있을 때 그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革世思想으로써 개벽을 쳐들고 스스로 신념이 축을 찾아 세웠다. 개벽사상이란ㆍ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후천 세계의 대망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후천 개벽」이란 억눌린 민중들이 절망에서 사멸하지 않고 새로 살아난 기쁨을 함께 하려는 함성이었으며 이는 곧 민중의 시대가 열리리라는 두들김의 소리이기도 했다.
 한국에 있어서 개벽의 소리는 「민족적 민중종교」를 형성했고, 이들의 개벽이라는 표현은 변화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 있어서 사회변화의 요청은 전 민족의 운명을 건 일회적 자각의 소리이었다. 따라서 「후천 개벽」이란 표현은 역사적 창조의 의지를 담은 상징이었다. 개조니, 변혁이니, 혁신이라는 말도 곧잘 쓴다. 전환이니, 변화란 말도 흔히 쓰여온다. 이와 같은 표현보다도 더 적극적인 표현은 혁명이다. 민족이 국가 단위의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형성하려는 시민운동, 민중운동이 혁명이다. 그런데 이것보다도 더 전면적이고 적극적인 변화의 갈망을 담은 상징적 표현은 흔히 불교에서는 「彌勒」으로 표현해 오거니와 한국 이 땅에서는 수운 최제우가 「개벽」이라고 표현하였다. 수운은 선천시대의 시원을 상징했던 개벽이란 언어를 등장시켜 이 두 글자에 字宙魂 인간 혼을 불어넣게 하는 사상으로 전개시켰다.
 개벽은 ①천조의 대소유무를 覺知한 선각자들이 이 지상에 새로운 질서를 내 놓으려는 이지를 담고 있으며 ②모든 인간들이 상충되지 않는 관계와 통로를 열게 하는 새 도덕을 담고 있으며 ③아무리 적고 크고 간에 국가 단위나 민족단위가 무단히 다른 우월한 국가나 민족의 세력에 의해 억압당하지 않도록 해방하자는 논리이며, ④우주적 질서를 지상의 인간적 질서로 확립하려고 대세의 기운을 가늠하는 움직임이며 ⑤인간 개개인의 마음이 트인 상태에서 모든 것과 고맙게 생각하며 관계 맺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심법의 발견이다. 이 후천개벽시대의 심법은 곧 깨우친 민중들의 의식이며 마음씨이다. 그러면 민중에 의해 민중을 움직일 수 있는 깨친 민중의 심법은 과연 무엇인가.ㆍ
가장 보편적인 민중 혼이 되려면 ①상층지도체계의 질서를 하부구조에서 찾아내게 하는 선용활용의 심법이며 ②가치만을 쫓으려는 사고에서 가치설정의 원리를 찾게 하는 마음가짐이며 ③자기위상을 항상 아래로 내려서서 정립하려는 마음가짐이며 ④헤어날 수 없는 운명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 자세이며 ⑤비굴한 속에서는 굽히지 않으며, 고귀한 속에서는 고고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민중종교」는 조용한 가운데 이와 같은 마음을 모아 상층사회에서나 저 층 사회에서나 한결같이 역할 되며 마침내 「보이지 않는 종교」로서 보이는 기성종교의 틀까지 변화시키게된다.
 후천 개벽시대의 우주 혼을 체 받고 후천 시대를 살아야하는 민중이 되도록 가르치신 소태산 대종사는 이 심법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사람은 민중개개인의 마음속에 어떻게 불붙이고 있을까? ①일원상의 진리를 뫼시고 깨친 인간 혼은 민중 개개인의 가슴속을 열어주는 혼의 불씨를 찾게 하고 거기에 불붙이는 역할자가 된다. ②일원상의 진리를 뫼시고 깨친 인간 혼은 도덕이나 철학이 없는 지도자들의 가슴속에 진리를 넣어주기 이해 참회하도록 가르치는 존재가 된다. ③일원상의 진리를 뫼시고 깨친 인간 혼은 자기가 믿고 있는 교파의 가르침에 치우친 종교인들에게 회통의 윤리를 가르치는 종교인으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한다. ④일원상 진리를 뫼시고 깨친 인간 혼은 가정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인류의 구원으로 성화 시키는 길을 열어주는 가르침을 펴게 된다. ⑤일원상 진리를 뫼시고 깨친 인간 혼은 우주의 질서를 체받아 항상 은혜를 느끼며 그 힘으로 못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인이 된다. ⑥일원상 진리를 뫼시고 깨친 인간 혼은 우주적 질서를 체감하고 영성을 밝혀 자기가 책임진 집단을 공명정대하게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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