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 역사의 공동체의식 바탕으로

 우리교단에 있어서 이제 세계종교연합이니 유알(UR)이니 하는 말은 그 말이 특수용어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생소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대산종법사께서는 일찍이 세계 종교연합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하신 일이 있었다. 종교연합운동은 아직까지는 세상에 크게 알려지거나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실시하여 오고 있는 몇몇 선진들의 전례를 볼 수가 있다. 우리 대산 종법사의 메시지는 근자에 아시아 종교인대회와 세계 종교인 평화회의 등 국제적인 한마당에 원불교대표에 응하여 정식으로 전달되기도 하였고 혹은 본회의 의제로도 상정 채택된 적이 없지도 않았다. 대산종법사께서 세계종교연합을 제창한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는데 이 운동은 운동 그 자체로써도 별다른 변화나 진전을 볼 수 없었고 세계종교자체에도 크게 달라지거나 새로워 진 것은 없었다.
 대산종법사 메시지에 따르면 세계종교는 반드시 그가 해야 할 세계 적인 역할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라 했다. 말하자면 아버지로서의 할 일과 아울러 어머니로서의 할 일이다. 정치의 일이 엄부의 소임이라면 종교의 일은 자모의 소임이라 규정한다. 이리하여 정치와 종교는 한마음(政敎同心)이 되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공동인식은 언제나 당연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세사를 누벼온 약육강식의 와중에도 국제연합이라는 게 생기게 되었고 일시적인 평화의 흐름이 유아 무야 된 채 이차대전을 치르고는 유엔(UN)이란 이름의 국제연합평화기구가 탄생된 것이 1947년의 일이었다. 유엔은 아직 그 실력이 당차지도 못한데도 그래도 세계 평화의 표준 노릇을 해온 지 거의 반세기를 획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도 그다지 알아주지 않는 유엔이지만 세계사적인 일대원력이 평화라고 하는 사실은 그 누구도 저버릴 수 없으니 그러한 평화원력이 유엔이라는 평화기구를 탄생시킨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정치에 있어서의 유엔이 종교에 있어서의 유알의 대등 관념으로 세계 종교연합운동이 제창되고 있는 것은 자생적인 현상이지만 정치에서나 종교에서나 궁극적으로 일치하는 공동의 방향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평화요 세계적인 평등이라 할 것이다. 이 평화와 평등의 염원이 역사가 있은 이래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 인들 실현되지 못하고 일체 생령의 전체생명이 암흑과 절망의 위구 앞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 작금의 이저 극한 상황을 놓고 아직도 이 평화나 평등의 문제가 전체적이고 종합적이며 근원적이고 세계사적인 문제라는 데에서 어떠한 관념이나 기계적인 요식 행위가 주축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은 절실한 것이다.
 이제 UR은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성취시킬 수도 없다. 유알 운동의 회칙이 지난 3회 임시수위단회에서야 통과되고 이어 UR추진위원회 정부회장이 제4회 임시수위단회에서 선출되는 등, 그리고 대산종법사의 세계종교연합설립선언이 있은 지 20주년이 되는 이때를 기하여 「종교간의 대화와 종교연합운동」주제의 신룡교학회 주최 학술회의도 「종교연합운동추진의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그 기본이념과 성격을 점검하는 한편 그 좌표를 설정해 가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일차원적인 일이다. 그러나 차제에 더욱 깊이 사려해야 할 것은 세계 종교가 어떻게 세계적인 어머니가 되고 세계정치가 어떻게 하여 세계적인 아버지가 되는가. 정치와 종교가 세계평화와 세계 통합의 한마음이 되는 진리와 사실을 베풀어주어야 하는데 과연 그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게 되기에는 정말 어림도 없는 도그 마적 종교자체의 한계는 어떤 것인가. 과장과 자기도취 전근대적 허위의식은 없는가. 이와 같이 함께 자성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려니와 유알에 대한 이념과 이론, 구체적 행동방향의 정립 등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일은 많다.
 종교연합은 미래 지향적 통일을 보다 실체화하는 운동이 일환이지만 우리가 스스로 진리와 생명 역사의 공동체임을 한결같이 깨닫고 체득할 때, 그것은 종교만이 아니라 선천의 울을 넘어서서 전 우주와 일체생령이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그 총체적인 하나가 된 보람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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