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44주년의 줄기찬 명제로

 「계산에 안개 개면 울창하고 높을 지요 / 경수에 바람자도 잔물결은 절로 이네 / 봄철 지나 꽃다운 것 다 시든다 말을 말게 / 따로이 저 중류에 연밥 따는 철이 있지!」
 다만 옛글(古詩)이라 소개하고 있는 이 한편의 시 귀는 예사의 기송사장과는 달리 이 나라와 이 회상이 앞날과 그 밝은 전망을 예시하여 주고 있다는 관점에서 매우 눈길을 끄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지금으로부터 46년전인 원기 29연 10월에 친히 이 예언적 글귀를 휘호하시고 총부 대중들에게 은밀히 이 옛글 속에 담긴 진귀한 뜻을 일러주시며 조금도 침체되거나 좌절하지말고 밝은 희망과 긍지를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 주셨다.
 때는 물어볼 것도 없이 식민지 악정과 질곡이 극도의 말기적 징후를 노출한 왜정말기이며 대종사 열반 당년으로 정산종사께서 대법을 계승하신 직후의 암담한 상황이었다. 대종사의 열반과 함께 동시적으로 와해되고야 말 것이라는 일제당국의 확신과는 달리 불법연구회의 자생력은 도리어 조용한 가운데 생명력의 터전이 다져져 가고 있는 기색이 보이는 지라 여기에 단말마의 발악이 없지 아니하였으니 이때 정산종사는 경각에 다다른 한대의 종언과 내일의 광복을 스스로 예감하며 마음속에 조명하시면서 부산지방으로 급거 피경, 초량교당에 이르러 그동안 한결같이 간직해오신 자신의 소회를 피력하셨다.
 그때가 이른바 「조선해방」한달 직전인 7월의 일이었으니 그 염원 그 기구는 지극히 간절한 것이었다. 「은혜의 땅 상생의 땅 열어주시고 진리의 세상 도덕의 세상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사은상생지 삼보정위소)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나라와 이 회상, 일체생령을 위한 정산종사 기도의 소박한 주제였다. 이와 같은 기도의 내용에 있어서는 그냥 보기에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겠지만 일세를 풍미하던 지배세력이 한판을 거둬들이고 다시 역사의 한세월을 맞이하는 전환의 고비에서 우리들의 깨어있는 주체와 바른 방향 그 전체적인 공동의 원력은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서 정산종사는 이와 같은 역사적 중생적 일체원력의 역동적 중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써 기도의 주제를 삼았다.
 흔히들 말하는 오만년 오천 년을 헤아리게 된다는 유사이래 역사시대의 독단과 폭력은 일체생령의 본래적 자연적 소망이며 역사적 원력인 「은혜의 땅 상생의 땅, 진리의 세상 도덕의 세상」을 강자의 강권으로 독점을 한 채 말살하여왔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팽창은 마침내 양극으로 분열 극대화하는 투쟁의 악순환을 이 역사의 종말적 현실로 노정 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악순환에도 한계가 있고 또한 극하면 변하는 것이 우주적 법칙인지라 이제는 그 어떠한 독식 독점 독권 독재하려는 집단적 이기주의나 제국주의의 행위도 저절로 그 그림자마저 거둬들여야 하는 막판에 다다르고 있다.
 당시 열강의 신흥식민주의 패권 자였던 극동일본과 구라파의 구가 전체주의 등 강자가 일 이차 대전을 거점으로 한판 무너진 것은 필연적인 전환의 첫 단계 평정소식이었다. 물론 우리들의 원력인 「은혜의 땅 상생의 땅, 진리의 세상 도덕의 세상」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것을 안다. 앞으로도 수없이 무너지고 일어나고 없어지고 나타나고 수렴되고 궁극적으로 통합도어야 할 기복흥망 진퇴성쇠의 준령과 고비는 끊임없는 역사의 과제로 남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들의 본질적 이상 그 절대적 생명의 현실이 바뀌거나 변질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땅 그런 세상이 도대체 어디며 언제 오느냐는 반동적 체제 속에서 우리들은 이제 새삼스럽게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것을 단 한시인들 떠나서 살거나 그것을 한번도 저버려 본 일이 없다. 「은혜의 땅 상생의 땅, 진리의 세상 도덕의 세상」은 우리들의 궁극적인 절대의 생명 현실 일 뿐 아니라 이러한 절대의 현실이야말로 우리들의 영원한 기도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정산종사로부터 그때 시작된 이 기도와 이 기도의 주제인 도덕과 상생을 구현하는 역사의 작업은 끝나지 않았고 또 끊임이 없다. 광복 44년의 줄기찬 명제로 더욱 빛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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