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 안이정 종사편 7
의두의 출발
대소유무이치와 인간 시비이해의 관계의심

사진>유일학림 「정전」공부 시간, 고산 종사님이 강의하고 정산종사님이 보설 하시는 장면.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보람이 있었다면 대종사님 같은 성현을 만난 일이며 그 스승님의 지도로 진리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자부한다.
 원기 27년 11월, 내가 감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이었다. 대종사님께서 갑자기 선방에 법상 하나를 새로 마련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12월 6일부터 동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동선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되어도 법상이 오지 않으니 대종사님은 자구 재촉을 하셨다. 그리하여 목수로부터 법상을 들여오게 되었다. 현재의 총부 상주선방에 가져다 놓고 정산종사에게 그 법상에 앉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정산종사께서 한사코 사양을 하며 그 자리에 앉지 않으시는 것을 보시고 대종사님께서는 진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이제는 법위를 갖추어야 하니 그 자리에 앉아라.』
 스승님의 말씀을 끝가지 거역할 수 없었던 정산종사님은 그로부터 3일 동안 선방시간에 앉으셨다가 법 상을 치우게 하셨다.
 나는 그 당시 어려서 철없던 때였지만, 법좌까지 제자에게 양위하시며 앞날을 이해 연마하도록 해주셨던 스승님의 은혜가 한량이 없음을 오늘에 새삼스럽게 뼈저리게 느낀다. 그때 그 법상은 잘 보관되었어야 하는데 후진들의 소홀함 때문에 없어지고 말아 퍽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흐를 수록 나는 견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 졌다. 그 당시 늦어도 30대 안에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수양에 취미를 갖고 자선과 염불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성리연마 하는데 의심이 일어나지 않아 고민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면서 의심을 일어 내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양 연구 요론」을 보던 중 3학 8조의 교리에서 연구라는 데서 공부의 힌트를 얻었다. 그래서 우리 교리를 체계 있게 연마해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한다」는 조목에 의심이 생겼다. 어떻게 건설되고 어떻게 운전해 가는가 궁금증이 일어나 총부 구내 여러 스승님들께 여쭈었지만 확연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총부 예회 시간에 이 문제를 질의하였다. 대종사님께서 임석하였을 때였다. 그 당시 예회의 질의문답시간에 질의가 들어오면 총부 교감으로 계셨던 정산동사께서 즉석에서 대답을 해주셨고, 혹 다음 법회로 넘기는 수도 있었다.
 나의 질의를 들으신 대종사님께서는 물어 볼 것을 물었다는 표정이셨고, 그래서 이 문제는 중요하니 다음 법호에 대답 해주겠다고 하셨다. 정산종사께서 다음법회시간에 해답을 주셨는데 이때의 법문이 「정산종사 법어」경의편 36장에 수록되었다.
 「성인은 반드시 우주의 진리를 응하여 인간의 법도를 제정하시나니, 우리 법으로 말씀하면 일원상의 종지는 대자리를 응하여 건설된 법이요, 사은의 내역들은 소 자리를 응하여 건설된 법이요, 인과와 계율 등 모든 법은 유무자리를 응하여 건설된 법인 바 성인의 법은 어느 법이나 이치에 위반됨이 없이 시비이해가 분명하게 짜여지나니라. 또는 이를 개인공부에 운용하는 방법으로는 항상 일원의 체성을 체 받아서 일심 즉 선을 잘 닦으라 하신 것은 대를 운용하는 법이요, 사사 처처에 보은 불공하는 도를 잘 알아 행하라 하신 것은 소를 운용하는 법이요, 사사 처처에 보은 불공하는 도를 잘 알아 행하라 하신 것은 소를 운용하는 법이요, 유무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유무를 집착하지 아니하고 유무를 따라 마음을 활용하며 변천의 도를 알아 미리 준비하여 사업을 성공하게 하신 것은 유무를 운용하는 법이니라.」
 나는 이를 계기로 연구 표준이 잡혀졌다. 그리고 대종사님이 열반하시고 얼마 후 현 대산종법사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온갖 책을 다 보았으나 별로 참고 될 많나 것이 없었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남화 경은 한번 볼만하더라』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이렇듯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열중하는 재미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원기 29년부터 주어진 총부 외감원 생활 2년이란 길고도 짧은 세월을 큰 대과 없이 보내고 원기 31년 최초로 설립된 교육기관 「유일학림」에서 제1기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입학한 동기생 중에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수좌 일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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