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활동하다 입교,
원불교 일이라면 두번 생각 않고 앞장서

 나는 진타원 변성원 교도의 연원으로 원기 61년 입교를 했다. 그당시 변교도는 적십자 부녀봉사회장이었고 나는 총무로 활동했다. 형님 동생 하면서 다정다감하게 지냈던 시절이었다. 이 인연으로 인해 지금도 형님 동생하며 서로를 격려하며 따뜻한 마음을 건네고 있다.
 나는 비록 형님의 인정에 끌려 입교는 했으나 교당 법회는 지성스럽게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김해교당 안정진 교무님께서 인과보응에 대해 설법하는 것을 듣고 무한한 환희를 체험했다. 인과를 농사 짓는 것에 비유한 교무님의 설법은 내 생활을 반조해 보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인과의 오묘한 이치를 생각하며 복짓기를 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런 체험은 나에게 놀라운 변화도 가져다 주었다. 원기 62년 남편(류영익, 서김해교당 교도회장)에게 입교를 권할 정도였으니.
 남편은 교전을 넘겨 보면서 교리도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교리도에 신앙과 수행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밝혀 놓았다며 놀라워 했다.
 용기를 얻어 남편에게 교당에 한번 가 보는 것이 어떨까요하면서 넌지시 말을 건네 보았다. 의외로 이유없이 따라 나서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법신불사은전에 감사의 기도를 수없이 올렸다.
 나는 남편의 입교 이후 어느 누구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이 공부에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결심은 곧 실행되었다. 집과 교당이 가깝게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새벽 기도를 지성으로 다닐 수 있었다. 기도의 힘이 내 신앙과 생활을 지탱해 주는 바탕이 됨을 누구보다 나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원기 70년 김해교당 연원으로 봉황동에 생활관을 마련한 서김해교당 창립요인으로 조그마한 정성들을 보탰다.
 초기에는 교당 설겆이 뿐만 아니라 교무님과 함께 10~20리길을 마다않고 순교를 다녔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교도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법에 귀의한 이후 원불교 일이라면 두번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런 초기의 신앙심이 바탕이 되어 요사이는 어디를 가든지 경계를 당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심고를 올린다. 조석심고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집에서 새벽기도를 올린 후 틈나는 대로 교전쓰기를 하면서 마음대조를 한다. 오늘은 복짓는 마음으로 살았는가, 죄짓는 마음으로 살았는가에 대해 살핀다. 이 마음 대조가 진리가 나에게 가져다 준 행복이 아닌가 생각된다.서김해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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