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행 철저한 도양의 주인
공부표준은 불공하는 마음

 묵묵한 가운데 대종사님의 사상과 경륜을 전달하는 모든 교역자를 종법사의 대 행자로서 모시는 마음이 대단한 불심 깊은 한 교도가 있으니, 그가 곧 영광교구 도양 교당에서 주인역할을 정성껏 해오는 온산 안세종 교도(61세)다.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나자마자 첫돌만을 넘긴 채 부모님을 따라 충남 논산에서 수년간 살다가 9살 때부터는 우리 교단의 발상지이며 대종사님의 교단 창립의 얼이 깃든 전남 영광 땅에 이주하여 살아온 안 교도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단연코 「영광」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그가 자신의 고향이 영광이라고 함은 9세부터 성장한 곳이 영광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찍부터 대종사님의 회상을 만나 교단과 더불어 호흡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더욱 크게 의미부여하고 싶다』는 한마디에 절로 수긍이 간다.
 4대 독자이던 부친께서 한때전북 정주인근의 사찰인 백양 사에 머물면서 불경공부를 한 일이 있는데, 부친께서는 「단명보」(자손이 귀한 집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단명하는 수가 있음에 장수하라는 뜻에서 사찰에 자식을 파는 일)로서 부처님과의 인연을 지중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2남 1녀중 장남인 안 교도에게 변천의 시대를 맞아 혁신불교인 원불교를 소개해 주셨다고.
 이에 따라 17세의 나이로 입교하게되었고, 입교하자마자 교당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다 향산 안이정 교무(현 중앙훈련원 상임고문)가 도양 교당 재직시 주무라는 사령장을 받은 바 있는 안 교도는 주민의 많은 수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여 배움의 길을 걷지 못 못함을 보고 야학을 마련하자고 몇몇이서 안 교무에게 논의, 「도양원광 공민학교」(현 해룡중ㆍ고등학교의 전신)를 세우는데 한몫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안 교도는 당시 대표경전으로 사용되던 「불교정전」을 줄곧 봉독했었고 이로부터 더욱 큰 한 생각을 얻어 전무출신을 지원, 중앙 총부에서 송천은ㆍ박정훈 교무 등과 수학과정을 밟기도 했으나, 부친께서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여 열반함에 그만 전무출신의 길에서 도중하차했다고.
 그 후 7남매의 자녀를 키워가면서도 교당을 매일 나가다시피 하면서 농사를 지어온 안 교도는 주고받는 이치 등을 몸소 느껴왔고,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대인ㆍ대물을 할 때마다 「불공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며 「처처불상ㆍ사사불공」을 공부표준으로 삼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도양교당 교도로서 40여 년 간 힘닿는 대로 일해오다 근래에 들어서는 「고문」직을 맡고 있는 안 교도에게 김법운 교무는 『심고 좌선으로부터 법회참석 계문 준수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신앙ㆍ수행해 가는 모범적인 교도』라고 한마디 귀띔한다.
【조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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