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 안이정 종사편 16
교육의 동산
교역자 양성의 보람과 긍지로 일관

사진>동산선원장 시절, 선원생들과 당시 같이 근무했던 예타원 전이창 종사와 함께 한 향산종사.
 총부의 해맑은 공기에 젖어 신선으로 살아가는 듯 법열에 차서 생활한지 2년이 흘렀다. 중앙선원장이란 직책이었지만, 이름만 그랬을 뿐 현실적으로 운영의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다만 현재의 상주선원 역할을 일부 하였던 것이다.
 동산선원은 원기 38년  대타원 이인의화 선생의 서원으로 이루어진 도량이다. 처음 이곳을 둘러보신 대종사님께서 내 오늘 여기에 교단 만년의 기초되는 땅을 정하였노라. 앞으로 이곳에서 많은 성현들이 상주설법을 하게 될 것이고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되리니 화피초목 뇌급만방의 불 세계를 이루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받들고 대타원님께서는 온갖 정성을 쏟으며 심축하기 13년의 세월이 흘렀고, 일본 신사를 인수, 강당을 신축하여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교단의 동량을 길러내는 요람지가 되었다.
 그동안 역경 난경을 헤쳐오면서 교단 인재를 배출했던 교육의 터전에서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특별한 기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논 9필자로 농사를 지어서 운영하자니 애로가 많았다.
 그러므로 직원들에게는 총부 수준만큼도 용금을 못 주었다.
 그러나 선원생들의 교육과정은 대학과정과 함께 해야 하므로 대학 교수들을 강사로 초빙했다. 내가 부임하여 해가 거듭될 수록 숙고와 식당이 문제였다.
 이러한 난제가 있을 때 대책을 논의하던 중 구내에 있던 동이리 교당을 선원논의 일부와(현 동이리 교당) 바꾸기로 하고, 동이리교당을 식당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나는 주로 정전과 대종경시간을 담당했는데 오전 시간에는 거의 빠짐없이 시간표가 짜여졌다. 이곳에서의 보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인재를 기르는 일이었다. 사회 교육계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우리는 특히 만생령을 구원할 교역자를 양성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남다른 긍지와 보람을 가질 수 있었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배우는 심경으로 가르치고, 의견 교환하면서 본래 서원을 다짐했다. 더구나 이곳 동산선원은 그 때만해도 영산 에서 기초적인 수업을 마치고 올라오는 학생들로 구성되어졌기 때문에 나는 더욱 반가웠다.
 나는 앞으로 교단의 인재가 될 학생들을 대하면서 무한한 교단의 발전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정성스럽게 교과과정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년 개원기념일에나 졸업식 때에는 벅찬 감동을 받곤 했다.
 특히 이 도량이 이루어지기까지 호렴해 주신 대종사님 성령과 선진님들과 호법 동지들의 숨은 공덕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훈사를 했다.
 세상의 기반은 도덕이요, 도덕의 기반은 정법회상이요, 정법회상의 기반은 재불재성이요. 제불제성의 기반은 마음공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으로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일원대도에 근거해 각자가 마음공부를 잘 함에 있다는 것을 알아서 마음공부로 튼튼한 정신적 기반을 다져 나가야 될 줄 압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진리적 종교의 신앙으로 정신적 주체를 확립하는 일이요, 둘째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삼학을 수행해서 마음을 길들여 대중화력을 갖추고 사중보은의 감사생활로 대감화력을 나투며 사용의 원만한 실천으로 대평등력을 발휘해서 개개인이 원만한 인격을 이루고 이로써 천불만성을 배양 시켜 교단 만대의 기반을 이루고 일원세계 건설의 기반을 이루도록 해야 될 줄 압니다.
 선원교육의 특징은 실력을 본위로 실질적인 남녀 교역자를 많이 양성해 내는 일이요, 도학을 본위로 실지신앙과 수행을 직접 단련시키는 일이요, 시방세계의 구제를 목표로 교육하는 대공도 본위의 사상을 갖도록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요구하는 인물이 되는 요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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