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김중묵 종사편 5
주인과 머슴
과수원 일하며 대종사님께 칭찬듣기도

사진>대종사님 열반 장의 행렬 광경.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일은 복숭아밭에서 임부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뽕나무도 기르면서 과수원 일을 했는데, 나는 이때 대종사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내가 인부들 일을 시키는데 요령 있게 잘 관리한다고 칭찬해 주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 하다가는 시간만 허비하고 능률을 올리지 못할 것 같아 연구를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복숭아를 싸는데 있어서 수십 명의 인부가 동원되는데, 잘못하다가는 해찰하는 사람이 있게되어 나는 조를 짰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나누어 임무를 맡게 하고는 조장에게 본인은 일을 안 해도 좋으니 사람들을 잘 살피라고 했다.
 이렇게 일을 시키니까 일을 잘하는 사람과 잘못하는 사람이 한눈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래서 잘못하는 사람은 다음 날 나오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따라서 복숭아를 잘 싸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었다. 그러니 일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고 하나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신 대종사님께서 인부들을 부릴 줄 안다고 하시며 처음으로 다독거려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세월이 가는 줄 모르게 총부 생활에 재미를 느꼈고, 더구나 대종사님을 받드는 그 법열 속에서 나는 나의 선택에 다시 한번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뜻과 같이 되어 주지만은 않았다. 천년 만년 모시고 받들며 살아 갈 줄 알았던 대종사님께서 뜻밖에 열반을 하시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나의 부모님보다도 소중한 어른으로 모셨고 일생이 아닌 영생의 스승님으로 의지하고 살았었다. 그래서 열반이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평소 대종사님께서는 멀리 수양길 떠나신다고 말씀을 자주 하셨다. 법석에서도 하셨고, 사석에서도, 일하는 작업장에서도, 하셨지만 그 말씀이 열반을 의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다만, 나는 금강산을 좋아하시기에 금강산에나 가시려나 보다하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금강산에 가실 때 따라 가고 싶기도 했지만, 나 같은 사람을 데리고 가실 리 없을 것 같아 스스로 포기했던 것이다.
 원기 28년 6월 1일 그 날도 나는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싸고 있다가 열반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날 인부는 약 1백여 명으로 상당히 많은 작업을 하고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산천이 온통 오열하는 듯, 개구리 울음소리 닭울음소리까지도 슬픈 장송곡처럼 나의 귀에 들렸다. 나는 꼭 못살 것만 같았다. 이제 어떻게 산단 말인가.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통함 속에 장례절차는 진행되었고, 일인들의 감시 하에 발인식이 끝나고 장지를 향해 떠났지만 그나마 나는 장지에도 가지 못했다. 특별히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총부를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추석이나 명절 때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럴 때는 주인은 집을 지키고 머슴 놈이나 집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혼인하는 날 제일 시커먼 사람이 누구인 줄 아느냐? 장모가 제일 시커먼 사람이다.
 이런 저런 말씀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르고 총부에 남아 있었다. 대종사님의 크신 경륜을 체 받지도 못하면서 총부 외무원 일이며 산업부원 일이며 당하는 대로 일하며 공부하며 살았다.
 원기 31년, 나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1년 동안 휴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간고 한 총부 생활을 하면서도 늘 책을 가까이했다. 대종사님의 법문과 불교정전을 외웠다. 불교정전은 대종사님께서 마지막으로 펴놓으신 우리의 교리가 담겨있는 경전으로 원불교교전이 편찬도기 까지 우리교단의 소의 경전이었다. 나는 또 사서에 대한 것도 열심히 외우고 연마했다. 중용과 대학은 줄줄 외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논어는 어디에 무슨 글귀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보았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인물을 본위로 한 역사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 역사공부는 앞으로 교화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또한 유무념 대조로 선 공부를 했다. 나는 이 공부가 교역자로서 자격을 갖추는 길이며  처세하는데 구감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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