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信義)를 생명처럼
―홍 정 관 ㆍ 중앙교의회 부의장
ㆍ 대구교구 교의회 부의장
신설교당후원회(가칭) 창설을 염원
빚 갚는 심경으로 교단 일에 참여

쉼 없이 보은 ㆍ 봉공의 터전을 닦으며 찰나를 연원으로 이어가는 대구교구 지산 홍정관 교의회 부의장님(70세). 중앙교의회 부의장 겸 전국 원덕회장님이시며 상주교당 고문이시기도 한 지산님은 35년이란 짧지 않은 긴 세월동안 신앙을 통해 생활 속에서 불법을 활용하고 그곳에서 보람을 엮는 수행인으로 오늘을 개척해 오셨다.
특히 지역적인 이해의 부족 속에서 출범한 상주교당이 그 기반을 굳히기까지 말없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셨고 신의를 생명으로 하여 교화의 초석을 이루셨다. 이제 칠순을 맞아 부지런히 뛰어왔던 인생 노정을 회고하면서 여생의 과업을 새롭게 점검하고 다시 보은일념을 다짐하신다.
―그동안 교당과 교단의 크고 작은 일들에 참여하셨고 교구제가 실시되면서 대구교구 교의회 일을 맡으셨는데 교구 활성화를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시는지요.
▲우선 저의 능력에 과분한 직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편 최선을 다해 일하라는 명령이라 여기면서 의장님과 교구장님을 받들어 힘 미치는 데까지 노력하려고 합니다.
대구는 직할시로서 우리나라 4대 도시의 하나이지만 교세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더욱 조심스럽고 마음에 부담이 있지만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연차적인 계획을 수립해서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묘안은 없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교구 내 취약교당을 찾아 담당교무님들이 하실 수 없는 대화를 하면서 그 교당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면 어떨까 하는 구상을 했죠.
이런 일은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안 되고 공의에 의해서 진행되어야 하며 교무님의 승낙과 협조로 이루어져야 함으로 독자적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교구 내 각 교당의 활성화가 없이 교구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상당한 연마가 있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시행된다면 어떤 내용으로 순회하실 계획이셨는지요.
▲저는 같은 재가교도 입장이므로 터놓고 주인정신을 가져달라고 말하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의 응화신이며 사은의 공물임을 확신할 때 주인정신은 확립된다고 봅니다. 가령 자신의 노력으로 10만원을 벌어 음주탕진해도 현행법에는 저촉이 안 됩니다. 그러나 사은의 공물이라는 의미에서 보명 낭비는 곧 배은이 되므로 인류사회를 위해 쓰여 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재가교도들에게 저 나름대로 「내 교당이라는 신념을 갖자」고 강조하고 싶고 「교당의 어려운 일 타인에게 돌리지 말고 나의 잘못으로 돌려 책임질 줄 아는 공부심으로 생활한다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제 평소의 소신을 펼쳐 보고 싶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동안의 개인 본위의 인생관을 탈피하여 성현들이 지니셨던 전 우주 만 생령을 위하는 인생관으로 돌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즈음 세계정세를 보아도 하나의 세계로 지향하려는 조짐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곧 일원의 진리 구현의 한 시작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어쨌든 개인이 안고 있는 고뇌는 각기 달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고뇌가 무엇인가를 잘 포착해서 해결방향을 찾는 것이 교화의 근원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며 저는 명령만 있으시면 순응할 각오입니다. 취약교당 일으키는 기본적인 경제문제도 뜻만 모아지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기성교당들이 한 교당에 5명 정도만 원 1만원씩 모아 지원하면서 자체 힘을 기르도록 하는 방안을 몇 년 전에 교의회에 안건으로 제출했는데 제 생각과는 달리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저 자신이 공부심도 실천력도 없어 남의 앞에 나서서 한다는데 대한 용기도 없지만 공의로 하는 일이라면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7월에 상주교당 부설로 유치원 교사를 신축하셨는데 여기에 대한 말씀과 그동안 추진해 오신 백학장학회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천심이라 노는 것 보면 선(禪)이 됩니다. 그동안 소법당을 교사로 활용, 복잡했었는데 마침 교당 앞에 국유지 입찰공고가 있어 확보하여 건축했는데 부지를 매입하기까지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개인소유가 아닌 어린이 교육장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낙찰이 되었고 뜻대로 되었습니다.
백학장학회는 원기 65년에 상주사회에서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인재를 양성하고 그러면서 불우한 청소년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준다는 대전제아래 창설했습니다. 이 장학회 발족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운영체제를 최대한 영구적이고 합리적으로 모색했습니다. 금전에는 사욕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일체가 은행창구에서 시행되도록 면밀한 검토아래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이 장학회원이 된 후 교도가 된 분도 있지요.
이곳 상주 현실로는 뜻은 있어도 재력 부족으로 사회사업을 주저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단독으로는 불가능해도 뜻을 같이한 사람끼리 단합하면 할 수 있는 항구적인 사업이라 확신하고 조직하여 초대회장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 교화차원에서 많은 활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시면서 과거보다 달라진 점을 어떤 것이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성격이 퍽 급한 편이었는데 많이 늦춰졌습니다. 공부심 부족으로 두드러지게 진전된 것은 없지만 경계 지나고 나면 얼른 뉘우치고 회광 반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제 생활 지표가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데 있으므로 인고의 진리를 통해 내면의 세계를 안정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 안정된 바탕 위에 은혜의 원천을 발견하여 무한한 미래를 개척하고 오로지 공익사업에 헌신하려고 합니다.
교단적인 사업인 성업봉찬회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달 30만원씩을 송금할 생각입니다. 빚 갚는 심경으로 사은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한다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부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시대를 향도했던 창립정신을 되살려 정신개벽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많은 일꾼이 나오기를 염원하면서 신설교당후원회(가칭)를 조직하여 적극적인 교화의 뒷바라지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항상 이른 새벽 부부(부인 ㆍ 양원익)가 함께 독경으로 하루를 열면서 보은의 일터를 개척하시는 지산님. 거기에는 노년이란 세월이 장벽일 수가 없다. 물 흐르듯 여여(如如)할 뿐.
[박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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