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정의 흐름으로

이제 원기 71년도 총회가 불과 며칠로 임박하고 있다. 말하자면 올 한해도 거의 다 살아온 셈이다. 살아온 것도 살아온 것이지만 앞으로 닥치고 있는 겨울철 준비하며, 명년 또 한해를 살아가야 할 예산도 세워야 한다. 이렇듯 해마다 연례적으로 치러하고 있는 예산 결산의 행위라는 것이 어쩌면 일상성을 못 벗어난 것도 같고 마땅히 그래야 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일쑤다.
그러나 생각해보자면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일상적이고 저속적인 것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려니 하는데, 그 살림살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살림살이의 내용인 즉은 과연 가치가 있고 바람직하고 진취적이고 풍요한 것이고, 또 그런 반면에는 간고하고 불확실하고 시달리고 있고 쫓기고 있고 좌절과 절망의 악순환 등 그 어느 지경에 처해있든 이것은 우리들이 다 같이 살아온 생명의 역사 그 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 삶의 역사를 스스로 돌이켜보고 마무리하고 동시에 새 삶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우리 교단이 이 한해를 살아온 살림살이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살림을 살림답게, 공정하고 원만하게, 미래를 꿰뚫어 보는 밝은 안목으로 調理하고 均齊하고 總攝하고 이리하여 반드시 그것은 원불교의 구체적인 흥망과 총력을 통하여 실현되고 이끌어왔는가? 이러한 원칙론적인 요청이나 일종의 반성에 대해서는 다소의 무리는 없을 수가 없을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하고 나설 수만은 없다.
일반적으로 살림살이라면 경제 전반의 운용이 좌우하는 것으로 여겨온 것이 상식인데도 그 중요한 경제 자체마저 정신의 경륜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신력으로 일관되는 기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올 한해 원불교 교단의 총체적인 살림살의 내용과 그 필연의 귀취와 방향을 바르게 아는 것은 다름 아닌 교단이 설정하고 있는 교정지표를 통하여 원불교의 궁극적인 現실체, 그의 정신차원의 현주소를 正見으로써 살펴보고 파악하는 것이다.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로써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들 자신이며 우리네가 살아가는 세상이치인지라, 우리네 교단사인들 물론 부정도 긍정도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교단의 현실, 교단의 재정, 교단 살림살이 명암의 실태 등 이 모두의 현실적 여건은 원불교의 정신사적 계맥(繫脈)으로써 역력히 수렴하고 이어지는 사항이지 결코 물량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단의 현실적인 실체가 어쩌면 불안전하고 부조리한 것도 같고 불확실성으로 혼돈상태로 떠오르는 적이 문득문득 있겠지만, 이제 교단史는 분명히 전근대적 교단주의 시대는 아니다. 원불교의 정체, 원불교의 역사는 어떠한 개인의 편견이나 아집으로 부정이니 긍정이니 옳으니 그르니 검으니 희니 제 소견 미치는 대로, 그저 그런대로 그만일 뿐이지, 대경대법에는 일호의 영향도 끼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무차별 혼돈상황이 자기의 의식을 어지럽힐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一?在眼」의 허공 꽃인 것을 알아야 하며 그게 정작 「正經大原」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원불교의 역사적 발전과정 또한 제대로 고동을 울리며 정정당당하게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
이제 교단의 살림살이를 마무리하는 일과 아울러 교단의 밝은 내일을 예비하는 것은 뜻있는 일이며, 원불교의 궁극적 실체를 바르게 보는 새로운 자각과 이 교단과 늘 함께할 수밖에 없는 교단으로 향하는 한결같은 애정은 말로 되는 게 아니고 저마다 스스로 하는 바로 그것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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