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자
―김 도 심 < 교무 ㆍ 서산교당>
교단에 좀 더 긍지와 애정 갖고 접근
각 분야서 「원불교적 방법」모색돼야

해마다 맞는 11월이고 총회이건만 금년 총회는 2대말을 1년 앞두고 맞이하는 총회이기에 설렘과 기대가 큰 총회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선진과 후진, 출가와 재가가 1년 만에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功過를 논하기보다 교단 발전을 위해서 있는 지혜를 다 짜내고 가슴 가슴에 대종사님의 구원의 혼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면 싶다. 구인선진이 회상 건설을 위해 목숨을 맡기셨던 봉공의 힘이 우리들의 온몸에 솟아나 두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는 만남이 되었으면 한다.
생각해보면 교단 70년 역사 중에 전반 30년은 빼앗긴 나라에서 간판도 걸지 못하고 교화하였다. 원기 32년에야 「재단법인 원불교」이라는 교명을 천하에 공시하였다. 그렇다면 「원불교」명칭을 사용한 역사는 이제 40년에 불과하다. 40년의 역사에 원불교만큼의 발전을 어떤 종교사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오늘의 현실에 만족하거나 자만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타종교와의 단면적 비교로 인하여 교단을 과소평가하는 일을 말자는 것이다. 좀 더 긍지와 애정과 자부심으로 결산하고 계획하자는 것이다.
텅 빈 일원상 앞에서, 소소 영령한 밝음으로 우리를 비추시는 법신불 앞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인식 속에 내일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많고 시간은 짧다 보니, 말하고 싶어도 듣고 싶어도, 말하고 들을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럼에 따라 뭔가 마음 한구석 아쉬움이 있고 자칫 오해도 생기기 쉽다. 금년 총회만큼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듣고 싶은 얘기 다 들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주어진 일터에서 안일과 능력부족과 때로는 대중의 시비가 두려워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참회하자. 자기의 잘못을 은폐하거나 미화하여 순간적인 박수를 받는 이보다 잘못을 고발하고 해결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영원불멸한 인과의 진리를 신앙하는 삶의 자세임을 다시금 다져보자.
문제를 숨기려 하거나, 방관하거나 또는 위험시하지 말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진리에 합당한 것이고 일원대도를 선양하는 일이라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다가서자.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못 다 푼 문제라면 더 유능한 후진이 나와 해결할 것이 아닌가? 정확한 출처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집 앞에 큰 산이 있어 돌아서 다니기가 퍽 불편했다. 그가 하루는 결심하기를 그 산을 옮기기로 했다. 삽을 들고 그 산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 이루지 못할 일은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 충고하자 그가 대답하길 내가 못하면 내 아들이 하고 아들이 못하면 또 그 아들이 하고 끝까지 쉬지 않고 하면 될 것이라고 하며 열심히 산을 팠다. 이 말을 들은 산신이 이거 큰일 났다고 하면서 산을 옮겨갔다는 이야기다.
진리를 선양하기 위해 마련된 교단과 기관과 교당에서 교단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非진리적인 방법으로는 살지 않은가 살펴보자.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외치고선 얼마나 교단운영을 시대에 맞고 시대를 향도하며 생활에 맞고 생활을 빛내며 대중에 맞고 대중을 선도하는 방법으로 운영했는지도 냉철하게 되돌아보자.
우리의 서원하고는 영 다른 욕심이나 정에 이끌려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여 빚어진 차질은 없었는가도 찾아보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미숙한 애정 때문에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동지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묻혀 살지는 않았는가도 돌이켜보자.
맡겨진 공금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누구는 주는 자가 되어 목에 힘을 주고 누구는 받는 자가 되어 비굴해졌던 일이 없었는지도 생각해보자.
지금 대학가에서 민주화를 외치면서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성급하게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처럼 교단의 발전도 성급하게 생각하여 非진리적인 방법으로 정법 실현 운운하는 성급한 행동은 수양을 한 우리들만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요, 방법이다. 뜻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방법이 옳지 못하면 더러운 물로 몸을 씻음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2대의 잘못들이 3대로 이어지지 않기 위하여 적나라하게 얘기한 다음 교단 3대의 지표를 합의했으면 한다. 우리를 한 마음으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우리를 채찍질하며 우리를 두 주먹 불끈 쥘 수 있게 만들고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표를 말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결정한 지표라야 생명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고, 애정이 있기에 반드시 총의로써 결정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3대 一回 12년의 교단 종합계획의 방향이 논의되길 바란다. 문화 사업회 오선교 회장님께서 「원불교가 새 시대의 새 종교로서 부각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일원문화의 창달에 달려있다.」고 강조하였듯이 이제는 각 분야에서 원불교적인 방법이 모색되지 않으면 우리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본인은 원불교적인 이념을 교법의 총설에서 찾아본다. 「우리는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다.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모든 종교의 교지를 통합 활용한 원만한 종교의 교화체제와 방법, 훈련 ㆍ 교육 ㆍ 행정이라야 원불교적인 문화적 소산이 아니겠는가? 단적으로 현행 교화체제를 살펴보자. 바로 이웃에 교당을 두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차를 두 번씩 갈아타고 자기의 교당을 찾도록 하는 것이 어찌 진리에 합당하며, 교구제를 도입한 지 10년이 가까워지건만 아직도 교구의 기능과 역할이 뚜렷하지 못함은 무엇을 뜻하며, 정법을 가지고도 적극적으로 교화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가? 내 교당의 개념이 달라지고 지역단위를 교당으로 생각하며 시내 권에서는 각 교당별 전문적 특색 있는 교화가 이루어졌으면 싶다. 예를 들면 이리시내를 교당으로 보고 남중교당은 청소년 교화場, 영등교당은 산업교화, 이리교당은 일반교화, 동이리교당은 노인교화 등등 … 교역자 혼자서 어린이, 청소년, 일반, 노인, 산업교화를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획일화된 교구체제보다는 지역 특성에 맞는 유기체적인 연합체제가 원불교적인 특성으로 시대를 향도하리라 믿는다.
하여간 우리 만나서 가장 원불교적인 방법이 어떤 것인가 찾아내자, 교화 ㆍ 교육 ㆍ 자선 ㆍ 훈련 등 자기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별로 밤을 지새우면서…….
내년 2대말 기념식 총회 땐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도 첨가해주길 바란다. 대종사님께서 창립 십이 년 기념식에서 간절하게 설법하시고 유혹하셨듯이 후진은 선진을 업어드리고 선진은 후진을 등이라도 토닥거려주며 다 같이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영모전 광장에서 강강술래라도 한판 벌이면서 우리의 영원한 교운 융창을 기리며 일원대도 만만세를 목청껏 불러보았으면 싶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