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 문의(問意)에 감사

겨울을 재촉이라도 하듯 몇 차례 찬비가 내리더니 이내 가을은 그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짙은 노을빛 안으로 텅 비어가는 끝없는 벌판을 바라보며 이제 거리마다 늦가을 금풍으로 내리고 쌓이는 낙엽위에 서본다.
사시의 계절이 돌고 돌아 순환하는 바퀴에 실린 채 어느 덧 겨울의 첫 고갯마루에 이른 셈일까. 우리네가 거저 이르기를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가꾸어 생장으로 가는 일, 가을에는 다 여물어 익어버린 열매들을 거두어들인다. 거두어들인 자리는 본디의 맨땅대로 비어두는 것, 드리고 겨울에는 이렇듯 비인 그릇마저 갈무리하여 생명의 그 소슬한 에너지들이 마치 밤바다의 정적과도 같이 잠거하는 가득한 숨결로 채운다.
내가 산다는 건 무엇인가. 우리네가 이렇게 살아간다는 사실, 교단이라고 하는 존재, 공동체의 의미, 생명의 의미, 역사와 진리와 그 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이와 같이 원초적이고 근원적이고 지극히 보편적인 물음을 스스로 되풀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70유여성상 우리 새 회상이 살아온 교단史를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들의 교단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이미 이와 같이 있는 대로, 없는 대로, 가진 대로, 가난한 대로, 못난 대로, 잘난 대로, 그대로가 이 역사의 한 낮에 다 드러나 있고, 내가 나를 뭐라 하고, 남이 나를 뭐라 하고, 우리네 사회가 우리네 세상이 다 뭐라 해도, 과연 그 뉘가 나를 뭐라 한들, 일원상의 그 자명한 개벽의 소식이 아니고는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진리와 역사와 일체중생으로 더불어 이 회상 우리 교단은 이 시대와 이 세상을 다 같이 함께 살아나가는 자기 분수와 공동체의 순리에서 더 벗어날 것이 없는 것이다.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가꿀 때 가꾸고, 거둬들일 때 거둬들이고, 갈무리할 때 갈무리를 하는 평상심으로 언제나 제일 아래 한바탕으로 내려서서 평탄한 순리, 거기 자율 하는 질서와 더불어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아온 것을 다만 떳떳하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이상에서도 그 이하에서도 부끄러워할 것도 자긍할 것도 없고 오로지 본래 면목대로 스스로 겸허한 인격으로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더욱 분발하고 항상 밝은 개벽의 새 아침, 뚜렷한 진리의 태양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때로는 생장하는 싱싱한 생명의 나무로, 때로는 인고하는 겨울 땅의 생각하는 나무로, 그러나 이제 벗을 것은 다 벗어버리고 이 역사와 이 시대, 우리들의 사회와 인간, 저 지루한 긴긴 밤을 누려온 선천의 무명과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도그마들을 한 티끌인들 남김없이 모조리 다 시원스럽게 날려버리고 그 언제 그 어디서나 다 같이 거듭나고 거듭나는 새로운 출발이 있어야 하는 우리들 저마다의 자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이 겨울보다 훈훈하고 따뜻한 갈무리와 명년 또한 밝은 내일을 살아나갈 교단 삶의 기틀을 예비해야 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교단의 주인은 결국 재가와 출가교도이다. 우리 모두가 법으로 훈련 받아 기질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도야하는 적공을 성심성의껏 다함으로써 주인이 될 수 있다.
제33회 정기 중앙교의회는 총규모 9억1천여만 원의 중앙총부의 예산으로는 물량적 수치 면에서 극소이지만 이만한 예산이 서지는 배경을 헤아려볼 때에 정말 눈물겨운 헌신과 무위이화로 모아지는 끊임없는 정성의 흐름을 읽으며, 대의에는 물과 같이 합하고 흔연히 동참하는 중앙총부에 대한 문의(問意)에 거듭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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