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를 방문하고
종법사님을 친견하는 행복
값진 땀 흘리며 영모묘원이 진행되고
총부정문 공사장을 보니 기쁨이 넘쳐
교단의 발전을 기원하오니

4월 1일 원불교 남울산 교당에서는 김항선 교무님의 인솔하에 버스를 전세내어서 일반 교도님 28명, 청년회원 10명, 유년회원 10명이 원불교 중앙총부를 방문하였습니다.
몇 번씩이나 총부정문을 대할 때마다 초라하게 보였는데 지금 한창 총부 정문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몹시 기뻤습니다. 다음 기회 어서 와서 멋진 총부정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차가 정문으로 총부에 못 들어가고 훈련원 뒷문으로 해서 들어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총부의 성탑과 영모원 박물관 등 두루 참배하고 나서 대산 종법사님께서 영모묘원의 공원묘지 공사현장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총부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공사현장에 도착 하여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거대한 역사의 장이 이곳에서 웅장하게 펼쳐서 각종 차량과 장비와 인원이 동원되어 값진 땀을 흘리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묘원조성 현장 설명을 들으니 10만평정도 산야를 매입하여 우선 5천평을 1차 조성하여 출가나 재가교도나 원한다면 그곳에서 육신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마련되리라는 생각하며 나도 후손들이 이 거룩한 자리에 나를 안치하여 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둘째, 종법사님께서는 저희 남울산 교도들을 일일이 손을 직접 잡아주시는 따뜻함을 보여주시면서 저의 손도 잡으시니 우리 김항선 교무님께서 이 분은 밀양교도들로서 이사하여 우리 교당에 잘 나온다고 소개하시니 더욱 자상하게 격려를 하여 주시었습니다.
재래불교에서는 법 높으신 큰 스님을 친견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 하시던데 우리 종법사님께서는 저 같은 범부의 손을 잡아 주시니 황송하고 기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종법사님의 대자대비에 다시 한번 깊이 고개 숙여 합장 드렸습니다.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저는 원불교에 입교하여 이 회상에 참여하게 된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만고에 없는 우리 정법회상에 입교시켜준 저의 선배 연원이신 밀양교당 주무님이신 신태성 교도에게 감사 드리고 원불교도인 저 자신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싶은 심정인 동시에 난생 최고의 잊을 수 없는 뜻이 있는 총부 방문을 마치면서 우리 교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성가 31장을 힘차게 신나게 부르며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이 진 심 행(교도 ㆍ 남울산교당)
인과와 삼화의 함수
신앙생활은 가족 교화부터
부인과 동생의 투병 기적은 믿음이
삼남의 출가는 일원가족의 큰 영예
심화 ㆍ 가화 ㆍ 인화는 신조
인생행로나 속세기관에서도 5년단위로(예 ㆍ 5, 10, 15, 20년등) 모든 업적평가를 매듭지어보는 관습이 있다. 4월28일 대각개교절 기념일을 앞두고 나의 가족교화 상황의 손익계산을 하여 보앗다. 평소 대산 종법사님의 인생 5기 법문을 가슴깊이 간직하면서 공부하는 나로서는 금년 4월은 기념할만한 달이 아닐 수 없다. 약 7년전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누이동생의 눈물나는 투병의 시작과 일생의 동반자이며 법동지인 안사람의 5년전의 중수술로 인한 투병의 시작이 기간본인들의 혈성어린 기도와 선정으로 결집된 열렬한 신앙심으로써 그리고 일원가족의 총화적 격려로써 기적적으로 둘이서 작년부터 같은 시기에 완전회복에 가까운 경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리지 인과신앙의 증명이며 법신불 사은님이 본인들의 혈성어린 믿음에 바탕한 투병에 소소영령한 진리계의 특상을 내리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난 2월25일에 우리 일원가족 형성의 뿌리인 삼남 明呂(법명)를 출가시킨 것이다. 원불교에 가교로써 전 가족이 입교한 이래 본인은 물론이요 전 일원가족이 축복을 받으면서 기간속계 27년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중생제도의 성지를 받들어 일원대도 정법회상에 전무하게 된 사실이 나의 생애중 전술한 두 주무의 병마항복 사실과 아울러 영생토록 기념하여야 할 일이다. 다만 법신불 사은전에 일심으로 보은봉공 할 길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선인선과요 악인악과라 하지만은 이 회상에 참여하지 않았던들 그 모진 병마를 어떻게 항마시킬 것이며 또 어떻게 출가의 결심을 하여 중생제도 성업에 전무할 수 있었을 것인가? 특히 감명깊은 것은 재래불교의 피경적인 산중 출가에 비하여 우리 회상의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희희낙락한 출가식에 참여하였을 때에 다시한번 우리 대종사님의 선각을 앙숭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족교화의 결과가 우리 불제자들이 가족적으로 신앙에 완전귀의할 때에 상상할 수도 없는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그리고 사회적 공적 생활면에서도 본인이 자유당 정권시대 이래 38년간이란 긴 세월을 부실기업의 대표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던 회사를 인수 경영책임을 맡은지 5년이 지나서 미화 24만불 이상의 악성외채와 경영부실 구조를 외채상환과 재무구조를 완전히 건전화하여 흑자결산의 기적을 나타낼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지난 3월20일 제 11회 상공인의 날 공장 새마을 전진대회에서 영예의 정부산업포장 수상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5년전에 동립산업주식회사의 책임을 맡을 당시에 1960년대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외환관리부장으로서 당시 유명하였든 국가적 차원의 伊佛渙業借款의 한국측 실무소위원으로서 참여하여 그 당시 총재였든 민병주씨는 개인의 양심으로써 도저히 찬성할 수 없어 사임을 하였고 본인도 부장급으로서 사임까지는 못하였지만은 양심적으로는 고민을 하였던 사람인데 동립산업이라는 차관에 허덕이는 기업체의 경영을 맡게 된 것은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무슨 인과인지 몸의 처할바를 몰랐으나 무아봉공의 혈성으로 전임직원을 통솔하면서 사령탑으로서의 전력을 경주한 결과가 정부의 산업포장을 수상받게 된 것이다.
나는 평소에 노자가 말씀한 「三和를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라는 경구를 신봉하면서 본인의 心和, 접촉범위내의 家和(氣和) 그리고 사회전체의 人和, 이 삼화를 신조로 공사간 목표달성에 매진하였던 것이다. 우리 인과의 진리는 무심치 않아 5년만에 진리의 실을 내리신 것이다. 공적으로는 모범상공인으로서 산업포장을 수상하게 되고 사적으로는 두 혈육의 병마항복과 삼남 명려의 출가의 영예를 받게 되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혈심혈성의 신앙심과 기도정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고 순역경계를 자유자재할 수 있는 소소영령한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5,6년간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의 재무제표의 5년간 결과가 많은 흑자성과를 시현하였다. 인생 5기의 불제자로서 삼화의 총화를 바탕하여 선인으로 선과를 얻어 심전에 心耕 잘하여 心寶얻는 공부를 꾸준히 하여 반야의 피안까지 일신우일신으로 걸어가야 하겠다.
김 경 원<교도 ㆍ 중앙교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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