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끌어갈 방법으로 최초법어 제시
마음부처와 산부처 되는 길을 천명
부당한 의뢰생활 극복하고 정당한 자력생활 심어줘
「이 일을 어찌할꼬」의 의심 현실 사명감에서 나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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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사회윤리를 논하기 앞서 사회윤리란 무엇일까를 논급하고자 한다. 사회윤리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게 정의되어여 좠고 사회윤리에 앞서 사회학 자체가 사회주의 사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현실부정적 측면에서 다루어졌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차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회란 개념은 교단이 초세간적 의미라면 사회는 현세간적 의미에 있어서 교단의 상대편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문제와 함께 보아야만 큰 의미의 교단을 뜻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단의 윤리가 근본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사회윤리는 이런점에서 우리의 인격수행의 첫길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종사의 사상은 사회윤리와 떠나 있을 수 없는 사상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대종사님께서 구도에서 대각에 이르는 길이 모두가 사회와 떠나지 아니했고 대종사님이 사회에 내린 윤리적 메시지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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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님께서는 구도하실 때부터 남다른 방향에 서 있었음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대종사는 집을 떠나지 않고 구도했다는 점이다. 집을 다섯 번이나 옮겨가며 집을 떠나지 않고 구도하는 남다른 풍격의 구도자였다. 둘째 구도의 심경은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회의에서 출발했으나 뜻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지 사명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의심으로 바꿔졌다.
이것은 현실문제의 사명감이 있어서 나온말이 되겠다. 셋째 그 허탈속에도 가사를 떠나지 아니하여 「법성장」에 가기위해 선진포 나루에까지 가다가도 입정에 들은 사례를 볼 때 대종사의 구도가 모두 현실사회와 촌보도 떠나지 않고 실행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대종사가 대각하시고 나서는 시국정세를 살피셔서 개교표어, 최초법어, 병든 사회 치료법, 사은사요를 설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대종사는 그 대각한 내용이 불법과 일치되지만 지난날 여말에 유생들이 척불론으로 지적했듯이 불교가 사회에 제시한 윤리는 한때 실패한 것도 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유생들이 지적했던 불교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①인도적 사회윤리의 결함 조건으로서 불교의 안목에서는 無父無君의 綱常을 무시하는 방향이었다. ②경제적 사회윤리의 결함 조건으로 승려가 신도들의 시주에만 의뢰했다. 따라서 육바라밀의 제일조인 보시가 세상을 위한  보시가 아니라 불교의 사찰이나 승려에게 바치는 것이 보시로 알게된 것이 그 잘못된 사고방식의 하나였다.
이것은 지난날 불교가 사회에 대한 이해를 잘못해온 때문이라고 밖에 찾아볼 수 없다. 많은 불도들이 「佛이란 무엇이냐」라는 실의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해답을 찾았으나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사고는 자칫하면 소승적으로 빠지기 쉽다.
여기에서 대종사는 「마음 부처」가 「산 부처」되는 길을 천명했다. 산업부의 임원이나 실상사에 온 노부부에게서 말 안듣는 며느리를 살아있는 부처로 보도록 가르쳤다. 또한 법당안에 있는 부처에서 삼라만상 모든 곳의 「큰 부처」를 발견토록 한데에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은 모두 사회윤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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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종사께서 이 사회에 제시한 메시지는 무엇일까ㆍ 본인은 다음 세가지로 밝히고 싶다.
①사회의 귀의처를 제시한 점
대종사는 전 세계 인류의 안식처요 귀의처는 교단이라고 확정했다. 교단은 「公家」란 뜻도 되며 「우리 집」이란 뜻으로 밝혀있어서 우리 사회의 고향처로 보게하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단은 안식처라는 점과 함께 두 가지 기능이 요하는 곳이다. 첫째는 부단한 개조를 요하는 곳이며 둘째는 여러 대상에 건전한 관리를 요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에 주는 중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②사회개조의 방향을 제시한 점
이 문제는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에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을 서명하는 서장에 병든 사회의 유별을 ①불완전한 사회 ②부패한 사회 ③파멸하는 사회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세 가지 병든 사회의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섯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①남의 잘못만을 퍼 넘기려는 소위 원망병을 극복하고 감사생활로 돌려 나가자는 것이며 ②부정당한 의뢰생활하는 길을 극복하고 정당한 자력생활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며 ③지도받을 자리에 지도받지 않는 병을 극복하고 일체를 바르게 지도받는 길을 제시했으며 ④지도할 자리에 지도인이 무간섭주의나 무불간섭주의로 나가지 말고 바르게 지도하는 방향을 세우게 하며 ⑤봉공하는 공부인으로 이기주의를 버리고 이타주의로 나가 큰집 살림을 해나가자는 것이다.
③사회의 선도자가 되는 길
교단이 사회를 관리하고 다시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구체적 방법으로서 최초법어에 설명되고 있다.
첫째 수신의 요법은 현대인이 현실사회 속에서 보다 건전한 인격, 환영받는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니 「시대를 따라 학업에 종사하라」는 말씀이다. 계 ㆍ 정 ㆍ 혜 삼학을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라고 고쳐 말씀하신 근본정신이 확연히 드러난다. 둘째 단위사회인 가정 다스리는 법을 설명하였으니 그 근거는 가정에서부터 새 생활 운동을 하자, 가정에서부터 새 문화 창조운동을 하자, 가정에서부터 인간화 운동을 하자는 것으로 이른바 家道, 家風, 家産, 家規, 家範이 분명하게 하는 시범가정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셋째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이니 사회의 발달에 따라 계금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대중사회로 나뉘어 진다. 그러나 영원히 사회의 계층적 구조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Ossonski 說>
대종사는 현사회를 승자와 패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소유자와 무소유자등의 계층을 한 말로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 상호 모순대립의 관계에서 상호 조화협조의 관계로 바꾸자는 운동을 뜻한다. 그러므로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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