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말과 우리의 좌표
―한 정 원 <법사 ㆍ 원광대 교학대학장>
급변하는 현대사회

소태산 대종사가 교단의 계획년도를 설정한 제1대 36년은 일제의 수난 속에 찬란하게 꽃피운 대종사의 대각과 더불어 만대의 초석이 될 교단의 창건으로서 소위 「偉大한 교단 새 歷史의 創建期」라 하겠으며, 제2대 36년(72년)은 민족분단의 일대 수난인 6 ㆍ 25 전쟁을 마치고 한국 내 잡다한 종교사회 속에 대화와 會通을 가지며, 분단된 한국사회에 화합의 길을 제시해가며, 기관 확립으로 성장해가는 기초 작업의 시기이니 이른바 「교단기초형성기」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시기라 하겠다.
소태산 대종사 최초법어 첫 句에 「시대를 따라 학업에 종사하라」는 말씀을 교단이 남 먼저 시대감각에 적응해야 하겠기에 첫 말씀에 이루어진 聖句라 하겠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제시한 대로 과연 오늘날 시대적 상황은 어떠한가.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속에서 오늘날 몇 년의 역사가 과거 몇 백 년보다 더 바른 템포로 발전되고 있다고 했거니와 특히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 급격한 정치 경제적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지통을 겪어가며 살아왔다.
따라서 이 시기를 통해 우리 교단은 무엇인가 바꿔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무엇인가 대종사의 근본정신에 돌아가야 하며, 무엇인가 되찾아야 할 시기가 왔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바꿔져서는 안 될 것이 바꿔지고 꼭 개조해야 할 것은 바꿔지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런가, 요약해 보고자 한다.
교조의 사대 혁신사상
소태산 대종사께서 일직이 크게 개조했고 또 부단히 개조해야할 혁신정신이 있다. 대종사께서 크게 혁신했으나 오늘날에는 반성해야 할 점이 다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신앙의 대상과 신앙(佛供)의 방법을 크게 혁신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불상 대신 법신불 일원상을 모셔서 迷信신앙에서 진리신앙으로, 허위신앙에서 사실신앙으로, 개체신앙에서 전체신앙으로 크게 전환시켰으며, 신앙의 방법으로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되도록 혁신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같은 혁신의 정신과는 달리 한 갓 불상신앙을 일원상 신앙으로 대치할 것 외에 별다른 신앙 활동이 없게 되거나 법신불 신앙이 처처불상에 이른다는 미명아래 사실상 신앙행위 자체만 없어지게 딘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있는 점에 뜨거운 반성을 해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둘째, 수행의 표준과 방법을 크게 혁신했다. 수행의 표준으로서 수양 ㆍ 연구 ㆍ 취사 중 어느 하나만 편수하였던 종래의 수행방식을 고쳐 삼학을 원만히 수행하는 길을 제창한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경계의 有無와 六根의 動靜 간에 三學을 바르게 적용하는 길을 「內靜定 外靜定」으로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수행을 하는 사람 중에 현실경계를 멀리 해야만 참다운 수행이 된다는 과거와 같은 생각을 그대로 하거나 현실 속에 수행해야만 한다는 미명아래 수행을 하지 않고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心田을 묵혀버리고 마는 수가 없지는 않은지 반성해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셋째, 대종사께서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他자녀교육, 공도자숭배 등 사요를 제시하여 종래 사회의 폐단과 불합리한 차별제도를 극복하는 이른바 사회개조의 경륜을 밝혔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 있어 사요실천의 실적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반성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사요의 사회개조운동이 타종교나 일반사회에서도 강하게 일어나고 있으나 우리는 도리어 이 사회개조운동에서 정체성을 면치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을 스스로 냉철하게 반성을 해야만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넷째, 대종사께서는 과거 불교의 제사장을 지금 여기에 맞게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하는 생동하는 새 불법으로 혁신한 데 그 역점을 두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진정한 불법은 불교 자체만을 위해 묶인 생활을 하면 이것은 한갓 죽은 불교요, 이에 반해 불교에 사로잡히지 않은 불법의 활용만이 진정한 활불이 되는 길임을 강조하여 마침내 「조선불교 혁신論」에 詳論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불교도 점차 혁신의 기치를 들게 됨에 따라 도리어 혁신했던 當時의 불법만을 고수하는 우리에게 재래 불교화 되어 지는 느낌마저 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상은 소태산 대종사의 혁신정신이 오늘날과 같은 현대사회 속에 정체되기 쉽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임을 크게 반성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의 혁신 이념에 정체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 나가야 할 과제임을 제사하고 싶다.
영원불변의 세 가지 정신
이상은 원불교가 부단히 노력해야 할 혁신이념을 제시하였거니와 이에 반해 비록 이 현실이 천만번 변하고 바꿔져도 이것만은 바꿔져서는 안 된다고 이미 밝힌 것은 「법신불 일원상, 사은, 삼학 팔조를 골격으로 하는 正典精神」이라 하겠다.
첫째 원불교의 교단은 비록 아무리 어려운 현실과 조건에 잡혀 있어도 「自體分化」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는 신앙화 해야만 한다.
이것은 소태산 대종사의 「정전」서문 「교법의 총설」에 밝혔듯이 지난날의 교단이 각종각파로 분열되어 서로 융통을 보지 못했던 관계로 종교가 병들어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소태산 대종사가 새 회상 새 불법을 개창할 때에는 제불제성의 本意와 소종래를 발견하여 종래에 서로 막혔던 제종교인과 회통은 할지언정 자체 내 분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음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합할 수 있는 心量이 우리의 진정한 公心으로 승화되게 하는 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우리 원불교인의 신앙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한 배를 탄 우리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지고 그 일 그 일에 성실히 임해야 하며 다 함께 교조의 근본정신에 돌아가 생각하는 자세 외에 또 다른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정산 종사의 법문처럼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回?顧祖 하는 정신에서부터 우러나야만 한다.」고 한 뜻을 가져 협력하는 정신이 교단의 발전과 더불어 결코 무력해져서는 안 된다.
둘째 원불교인은 종교적 진리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교리가 「근본에 가면 하나로 만나게 된다.」는 세상이치를 보는 눈이 분명해야만 한다.
오늘날 사고방식이 다른 동 ㆍ 서양의 종교인들도 서로 회통하고 있으나 도리어 가장 가까운 종교인들까지도 서로 사움이 끝나지 않고 있는 中東의 현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이 이 하나의 진리를 현실사회에 구체화하기 위하여 정산 종사께서 同源道理, 同氣連契 ,同拓事業 등의 이른바 삼동윤리를 제창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부득이한 여러 사건 때문에 일시 분단되었다 하더라도 그 근본에는 서로 한 진리요 한 기운으로 되어 진 것임을 철저히 믿어야만 한다. 이것은 이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우리의 신앙인 것이다.
그러나 미리 같은 것을 강조한 나머지 달라진 현실을 무시하게 도면 도리어 바른 판단이 흐려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오직 구원의 진리, 원천의 세계에 서로 만나는 이치로 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현실에 있어 지나친 대결보다는 회통의 길로 접근하는 정신자세가 필요한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 주변에 유행어처럼 되고 있는 흑백논리의 문제점을 흔히 말하지만 그 해결을 못 보는 영원한 「안티노미」처럼 되고 있음은 이런 점에서 크게 반성해야만 한다. 따라서 반세기에 가깝도록 민족분단이 해결되지 못한 점은 무엇 때문일까. 구원의 진리가 하나로 되어져 서로 회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확신 속에 자기 마음의 분단 상태를 극복하는 길 외에 도 다른 길은 없다.
우리는 비록 서로 다른 相對者 敵對者 속에서도 언젠가 서로 만나지고 하나가 되어 질 수 있다는 확신과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요, 당면과제며, 영원한 신념이어야 한다.
셋째 원불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의 場인 현실을 보는 눈이 「은혜」로 되어있음을 確信해야만 한다.
이 세상 넓은 천지를 어떤 안목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상식적인 관점에서는 「험악한 세계」「거짓의 세계」「고통의 세계」「불신의 세계」「투쟁의 세계」등 우리의 의식 속에 이 세상을 버려야 할 공해의 세계로 보아 마침내 이 세상을 우리 마음 한구석의 쓰레기장에 버려버린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세상은 救濟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갈 소지가 다분한 것을 소태산 대종사는 간파한 것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는 이 세상을 상세히 보니 그같이 공해로만 가득 찬 험악한 쓰레기장  처럼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은혜로 충만한 감사의 세계요, 경외의 세계며 근원적으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상생의 세계로 되어 진 것이 이 현실임을 확신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 그 자체가 이 세상 한없이 많은 곳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한없는 은혜의 세계를 四重恩이가 가르친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오직 한 가지 被恩된 내역을 분명히 알아서 보은하는 길 외에는 다시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대하고 있는 모든 곳에 부처님이 살아 계신 곳으로 보고 속 깊은 불공을 드리는 정신 자세를 찾아내어 성실한 보은생활을 다하는 마음이 계속되어야만 세상이 밝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세상 넓은 곳에 相없이 바쳐일 하며 감사 보은하는 길은 어느 세상 어느 땅에 가도 변할 수 없는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어두운 그림자와 밝은 내일의 전망
소태산 대종사는 종래의 종교와 사회제도의 여러 가지 폐단을 찾아내어 새롭게 극복 혁신하고 미래세계에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종교적 경륜을 간단히 요약했다.
그러나 원기 72년 교단 제2대를 마감하는 오늘에 이르도록 우리는 크게 얻은 것도 많지만 반면에 우려해야할 어두운 그림자도 없지 않은 것을 찾아야할 시기가 온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발전이 있은 반면에 젊은 세대들이 자주 거론하는 바처럼 여러 가지 폐단과 우려되는 점을 다 같이 염두에 두어야만 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기성세대가 볼 때에 경험부족에서 나온 오해들도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 함께 거보를 내딛기 위해 교단현실의 우려되는 경향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 현실 속에 잘못되기 쉬운 제 경향을 제시해 보기로 하자.
①그동안 우리는 여러 정권들이 교체되는 악순환으로 인해 자체불안과 사회혼란 속에 오직 교단 안에서 단합하도록 한 결과 교단중심주의에로 역점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칫하면 소위 「교단주의」에 치중한 반면 사회를 위한 봉공 ㆍ 봉사활동에는 인색해진 점이 있다.
②그동안 우리교단이 확장과 발전에 역점을 둔 결과 질적인 성장보다 양적인 성장으로 기울어지는 소위 「물량주의」에 기울어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③종교적 최고가치인 성자魂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차츰 좁아지고 名利와 물욕에 사로잡히는 심리현상이 정당화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④교단이 확대됨에 따라 각 분야로 분화된 일거리가 많이 생김에 따라 상호 의사소통의 길이 막히고 공동생활보다 개별적 사생활중심의 교역활동을 정당화하게 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⑤초기교단(제1회) 당시와는 달리 법위의 기준과 준법의 기강이 점차 해이해짐에 다라 교단에 향하는 권위가 상실되어가는 위험이 엿보인다.
⑥이 땅위에 실현하려는 종교적 가치 창조 운동이 둔화되고 기정종교가 갖기 쉬운 안이성만 너무 일찍 차지해가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상 여섯 가지 우려되는 문제점은 어느 의미에서 교단이 성장함에 따라 수반되는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장차 치유하기 어려운 폐단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새해인 제2대말에는 이 어두운 그림자를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만 할 과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해결의 방안을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①소태산 대종사 당시에 있었던 그 事項의 本意를 되찾아 보되 만약 그때에 돌아가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으면 소태산 대종사의 본의를 찾아 그 정신에 변질되지 않도록 현실 속에서 극복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대종경 수행품 33에 밝힌 정신이라 하겠다.
②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도외시하거나 간단한 문제라고 등한시하지 말고 반드시 정성을 다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수행해 나간다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③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창조의 부푼 희망을 안고 지금도 소태산 대종사가 살아계시며, 우리의 법은 생명력 있는 정법이며 우리 교단의 모든 대중이 가장 잘 합력하는 주인공들임을 확신하고 공사에 정성을 다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반드시 해결되리라고 믿는다. 우리 교단은 큰 문제가 일어나게 되면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저력이 있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해결하려는 의지가 살아있는 교단이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줄을 모르거나 설사 안다 하여도 해결할 길이 막연하면 포기하고 마는 경향도 없지 아니하다. 우리 다 같이 부푼 꿈을 안고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밝은 내일의 앞날을 꿈꾸며 힘차게 개척해 나갈 것을 약속하는 초하루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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