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손으로 제 눈 빼는 자학행위 뉘우치며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하는 말이다. 듣기에는 그저 그럴 법도 하고, 그렇고 그런 소리다. 이런 일 당해도 그만 저런 일 당해도 그만 당하는 대로 살자는 것이 우리네 뿌리 뽑힌 백성들의 숙명논리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순리적이고 자기분수를 지키는 처세법인 것도 같다. 그러나 물론 이런 일도 있을 수가 있는 세상살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일 저런 일을 꾸미고 일으키고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작자는 누구고 이런 일 저런 일을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무리는 누군가? 이런 일 저런 일로 나타나는 우리네 세상살이를 모조리 부정일변도로만 보자는 것도 아니고, 있는 현실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짐짓 넘어서자는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당하는 일은 남의 일이고 직접 내 일이 아니니 무관사에 움직일 것이 없이 회피해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등― 요컨대, 세상살이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그 전체 상황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고 과연 우리들이 누구이고 왜 사는가를 철저히 깨닫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의 순환을 놓고, 고작 이따위가 소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의 수준인가― 하고 개탄하는 소리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비판이 아니다. 오늘날 전체주의나 전제주의 체제에서마저도 온 세상 깨어있는 백성들의 눈과 입과 귀를 제법 의식하고서 자못 안절부절 하며 이리해서는 안 되겠다고 겉으로나마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따위의 사례를 애써 돋보이게 하려는 판인데 저 무시무시한 구시대 침략과 학정의 잔재인 낡아빠진 고문장치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밀실에 남아있어 그 비인간적인 가혹행위에 의한 고문치사 사태가 근자에 발생하여 세상을 경악케 한 사건은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그래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백성들을 이다지도 비탄에 빠뜨리고 혼돈상태에 빠뜨리게 하여 놓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자고로 백성의 실체와 그 전체성을, 치자와 피치자, 엘리트와 민중 또는 상민과 양반, 부자와 빈민, 선인과 악인 등으로 갈라 세워놓고 이렇듯 이원구조체제를 유사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축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사적인 악순환을 되풀이해온 정치적 양극체제의 구조惡이라는 것도 이제는 한계의 벽에 부딪치고야 말았으니 그것은 우리네 뿌리 뽑힌 백성들의 눈부신 자각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자각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와 그리고 그것을 넘어진 도덕성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생명공동체의 생성과 성장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바로 그 과정이다.
「작은 재주로 작은 권리를 남용하는 자들이여! 대중을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하지 말라. 대중의 마음을 모으면 하늘마음이 되며, 대중의 눈을 모으면 하늘눈이 되며, 대중의 귀를 모으면 하늘귀가 되며, 대중의 입을 모으면 하늘입이 되나니 대중을 어찌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하리오―」 이것은 만연되어온 제국주의와 역사惡에 대한 대종사의 준엄한 경고다. 오늘의 이 시대 분단과 이데올로기와 집단이기주의와 사분오열로 지리멸렬된 의식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진실로 중대한 시사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모두가 우주적 주체라는 사실이며 그리고 제 손으로 제 눈을 빼는 이번 불상사를 뼈저리게 뉘우쳐 저마다 하늘 되는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삼아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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