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이신 대종사
창생의 도탄 구제할 책임을 작가하고
살기 좋은 사회건설에 적극 앞장서야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현대의 과학문명은 일찍이 인간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경이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선각자들이 우려한데로 적지 않은 병증이 나타나 이제는 인류의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 중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현대 무기의 파괴력이다.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핵무기나 기타 화학무기는 이 지구를 몇 번이고 초토화시킬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있는 중동의 전운이 언제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 형편에 있고, 자국의 이익을 이한 무모한 결심을 하게 되는 날에는 그 비극의 정도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비단 전쟁무기뿐이 아니다. 자원의 고갈과 공해의 문제도 심각한 과제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생산수단의 발달은 소비욕구를 충동시켜 과다생산 과 다 소비시대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기물과 뿜어내는 매연은 환경을 오염시켜 고기가 살 수 없는 물, 사람이 숨쉴 수 없는 공기로 변질시켜 버렸다. 인간들의 분별 없는 욕심은 날로 자연을 헐벗기고 지구의 자생력을 소멸시켜가고 있다.
 소비의 충동은 자연만 황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도 황폐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가 증가됨에 따라 삶의 척도가 자연 물질 소유로 저울질되고 그 편리를 즐기는 향락적 경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물질과 향락을 위해서는 예의도 염치도 망각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는 양심마저 포기해 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마치 돈과 향락이 삶 자체인양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체 살아가는 모습, 대종사님이 우려하신 물질의 노예화 현상이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보람을 상실한 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해 가는 인간, 물질을 위해서는 양심도 저버리는 인간, 자족할 줄 모르고 갈증 속에 허덕이는 인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초조, 욕구불만에 쌓여 공해 속에 찌들 리고 각종 괴질 에 시달리는 인간, 이러한 인간들의 삶이 바로 파란고해의 모습일 것이다.

구세의 길
 이러한 세상을 내다보신 대종사께서는 새 도덕, 새 종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시고 정신개벽의 길을 열어 주셨다.
 대종사님이 뜻하신 구세의 길이란 모든 물질을 은혜롭게 수용할 수 있는 인간, 서로가 감사하며 나눌 줄 아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가 대종사님이 뜻하는 광대 무량한 낙원일 것이다. 이 일을 가능케 하기 이하여 진리 적인 신앙과 사실적인 훈련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대종사님은 신앙이란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는 것이라 하였다. 참 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가 바로 은혜인줄 알아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이란 자기를 진리화해 나가는 것이다. 진리를 알고 그 덕에 합하고 그 덕을 나툼이 수행이다. 요행을 구하는 신앙이나 신통을 꿈꾸는 수행이란 미신적이고 허위 적일 뿐이다.
 대종사님께서 목표하신 광대 무량한 낙원이란 죽은 뒤에 가는 서방정토이거나 현실을 떠난 출세간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발붙여 살고 숨쉬며 사는 이 땅 이 사회를 은혜롭고 정의롭게 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천지자연을 고맙고 소중하게 알고 부모를 섬기고 형제를 사랑하며 사해동포가 서로 위하며 살고 인간도리니 도리와 사회적 규범을 존중하는 사회, 거기에서 서로 인권과 교육과 생활과 지식이 골라지는 사회를 가꾸어 가며 모든 사람이 바른 정신으로 물질을 선용하며 삶의 참다운 의미를 가꾸어 간다면, 그래서 인간의 지혜와 생활의 편리함을 늘려 간다면 그곳이 바로 살맛을 진지하게 느낄 수 있는 낙원이 아니겠는가.

구세를 위한 우리의 노력
어느 종교인들 자기들의 교조를 스스로 구세주라 말하지 않는 교단은 없을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구세의 경륜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여도 제자된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다라 그 위상이 좌우될 것이다. 대종사님은 법인기도를 시작하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들 각자가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고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일깨워 주셨다. 이 말씀은 비단 구인 제자에 한한 말씀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배린 명령이라고 생각해야 되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그 일이요 우리가 하는 일이 거기서 벗어남이 없겠지만 우리는 다시금 창생의 도탄, 파란고해의 현상에 눈을 뜨고 가까이 다가서야 되겠다.
 그간 우리는 교단이라는 우리와 자기라는 울타리에 갇혀 민중의 삶, 창생의 도탄을 소홀히 한체 지금의 세상을 태평천국인양 안주하는 꼴이 되지는 않았나 반성해 봐야겠다.
 대종사님께서는 세상이 병들어 있는데 지도자가 병든 줄을 모르거나 그 치료에 성의가 없다면 끝내 파멸의 사회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을 구제하기 위한 교단, 그 일에 몸바치겠다고 나선 우리라면 세상의 고통에 깊이 관심 갖고 그 병을 바루고자 성의를 다 하는 제자들이 되어야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살기 좋은 사회환경을 만들고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만들며 인간다운 인간으로 이끄는 일에 앞장서야되겠다.
 원망으로 뒤엉킨 세상, 온갖 갈등으로 대립되어 갈가리 찢긴 세상, 이기심으로 넘쳐있는 세상을 달래고 어루만져 고마움을 되찾게 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며 모두가 하나임을 일깨워주는 일, 그리하여 마침내는 동고동락하고 정의가 바로 서며 서로가 부처인줄 알고 서로가 불공을 잘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되겠다.
 또한 인간들의 과욕으로 병들어 가는 지구를 살려내기 위한 공해문제, 자원문제, 핵문제 등에도 깊이 관심 갖고 노력을 기울여 우리의 삶의 바탕을 은혜롭게 가꾸어 나가야 되겠다. 더욱이 거칠어진 인간의 심성을 다듬어 성품을 온전하게 하고 지혜롭게 하며 바르게 하는 교화에도 더 큰 분발이 요구된다.

건강한 못자리 판
 교단을 못자리 판에 비유한 대종경의 말씀이 있다. 농사를 지어보면 모 농사가 반 농사라는 말이 실감케 된다. 못자리가 건강해야 들판에 나가서도 병 없고 튼튼한 벼로 자라게 된다. 이 세상을 은혜롭게 하려면 바로 이 교단에 있는 출가인들의 삶이 건강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교단은 창립 기에 있고 대종사님과 구인선진들의 창립의 정신이 맥맥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현장인지는 모르나 아쉽고 우려되는 점들이 없지 만은 않다. 기쁘게 창생 위해 죽기를 작정한 그 혈성과 봉공의 정신이 우리의 정신이 되어 건강한 못자리 판의 소임을 다 할 때 소태산 대종사님을 전 세계인이 구세주로 받들어 모실 날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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