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14>
20세기 사진 예술가 1

사진> 브래디가 촬영한 전함 유니온 선상.
 메튜 Bㆍ브래디(1823-1896, 미국)는 뉴욕이 가난한 마을에 태어나 어릴 때는 그림을 즐겨 그렸으나 사진에 심취하였다. 한때 인물화가로 유명한 페이지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 자기의 스승인 몰스에게 소개하였다. 몰스는 무선전신의 발명자로 유명한데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술을 미국에 최초로 도입한 미국 사진 계의 선구자이다. 브레디는 몰스 교수가 재직한 뉴욕시립대학에서 4년 동안 사진기술가 미학을 공부하였다.
 이어 뉴욕시 브로드웨이에 스튜디오를 개설하여 흑백사진에 수동적 착색을 가미하여 새로운 형태의 사진을 만들어 내었고 1845년에는 미국사진협회에서 주최한 사진 콩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유명인사 12명을 사진으로 엮어 명사 사진전을 출판하여 명성을 다진 후 1861년 4월 남북전쟁 발생 후 7월 16일에 북부 육군을 따라 종군사진 반으로 참가하였다. 이때 마차에 이동용 암실과 3일분의 식량, 세 사람의 조수가 따라 다녔다. 당시 링컨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로 전쟁이 끝나면 「전쟁사진대감」을 출판할 때 이를 정부에서 구입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재를 통틀어 전선지역에 35개소의 촬영기지를 두고 수십 명의 사진기사를 채용하면서 전장의 각가지 장면들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이 나고 노예해방에 따른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지도자 링컨의 암살로 인하여 브래디는 전 재산을 날리면서 암울한 나날이 찾아오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불행이 연속으로 겹쳐 부인은 병사하게 되고 그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가 불편해 사진가로서의 활동에 장애를 받게 된다.
 신문사의 주선으로 「전쟁사진대감」이 출판되었으나 무일푼인 그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이런 처지를 동정한 친지들의 주선으로 사진 전람회를 준비하던 중 개막 15일을 앞두고 수많은 인물 사진, 전쟁사진 그리고 사실적 기록에의 도전정신을 남긴 체 타게 하고 말았다.
 그는 친구로부터 받은 외투 한벌, 몇 벌의 낡은 내의 그리고 영국 황태자로부터 받는 반지하나를 남겼지만 74년의 생애를 걸고 사실을 추구하려는 사진을 향한 힘찬 정열만은 인류의 마음속에 귀중한 유산으로 남아 역사에 빛나고 있다.
<원광보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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