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ㆍ 인권상실의 비극

올해도 입춘을 맞은 지가 불과 엊그제, 겨울다운 겨울도 한 번 살아보지 못한 채 무슨 봄을 맞는가 싶더니, 이것은 또 무슨 이변인가. 일찍이 우리네 세상 삶의 경험으로는 禍不單行이라 이러오지만, 근자 서울대생의 고문사태와 연달아 우리사회를 또 한 번 엄청난 충격이 도가니로 휘몰아 부친 부산형제 복지원 사건은 아직 얼어붙은 빙판위에 된서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인데, 그렇게 마지 못하는 한 가닥 인정만 있어도 차마 할 수 없는 노릇인데, 무엇이 어찌되었든 간에 그리도 끔찍스러운 일을 다반사처럼 저지를 수가 있다니, 인위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말살하는 행위가 어떠한 잔인한 악법의 테두리에서 인들 용납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근자에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이 공권력에 의하여 혹은 특정종교의 인류애와 사회적 양심을 표방하고 나선 소위 사회사업가에 의하여 유린되고 말살되었다는 이 비통한 사실을 놓고, 우리는 정작 무엇을 어찌해야 할 것인지 말문이 막힌다.
이미 우리에게 무슨 정치의 차원이니 종교의 차원이니 하는 사치스런 발상이나 사고논리는 짐짓 알바가 아니다. 생명이나 인권의 차원은 그 무엇과 비교될 수 없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정치나 종교가, 더구나 저마다 제 도그마 하나를 못 벗어난 저질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이러니 저리니 할 자격이 없다. 다만 그것은 그 아픔과 쓰라림과 생명으로서의 분노가 억울한 죽음과 궁극적으로 맞이하는 일체생명의 그 적멸궁의 涅槃을 함께 하는 생명공동체의 그 사랑 있는 슬픈 삶의 숨결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함부로 생명이니 인권이니 이를 수가 없다.
자고로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무참히 말살해온 역사악의 구조는 정치나 종교의 권력 지향적 집단이기주의적 작태와 소행으로부터 빚어진 것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형제와 이웃을 버리고 이리하여 貧病人과 부랑자가 속출하고 증가되어가는 원인행위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버림받은 고아, 기아 살길이 없어 떠돌이 신세가 된 것지를 낳게 한 그 사회의 밑바닥과 도덕성, 정치성, 종교성에 대하여 이제 그 무슨 책임소재를 따지는 일 자체마저 어색할 정도인데, 도대체 그래놓고도 지금 자기들이 굳혀가지고 있는 구조적 원인은 덮어둔 채 그 무슨 복지니 자선이니 인술이니 博受니 하는 따위로 사회사업이다 구제 사업이다 벌여놓고 이 세상에서 장을 치며 獨善을 부리는 뻔뻔스러운 그 모순과 자가당착은 무슨 꼴인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분오열된 우리네 의식세계, 험상궂데 일그러진 우리들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이 과연 무엇이고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종교니 정치니 하는 작태는 아직도 존재한다고 큰 소리를 치는 판국이지만, 이미 스스로 한계는 드러나 있고 볼 장은 벌써 다 봐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그 殺人者는 누군가. 그 누가 누구를 죽였다고 분명히 대답할 수가 있는가. 우리는 그저 이 세치의 더러운 혀로 말할 수도 없는 이 시대의 죄인, 同罪者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그 어디서나, 그리고 한판이 바뀌는 이 마지막 가는 판세에서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아니, 끊임없이 외칠 수밖에 없다. 이 하늘 위에서나 이 하늘 아래서나 우리의 생명은 그 어느 것과도 짝할 수 없이 스스로 높고 호올로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을 ―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사랑이 모두의 아픔과 고뇌로 돌아오는 우주 생명공동체 개벽의 새 생명인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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